[르포] "요즘 누가 노량진서 공시 준비하나요" 떠나는 공시생, 속타는 집주인…월세도 '뚝'

입력 2019-08-20 17:15 수정 2019-08-2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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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원룸촌을 올라가는 길이 비좁다. 높은 곳에 있는 원룸일 수록 월세는 싸진다. (홍인석 기자 mystic@)
▲노량진 원룸촌을 올라가는 길이 비좁다. 높은 곳에 있는 원룸일 수록 월세는 싸진다. (홍인석 기자 mystic@)

“노량진 월세가 최소 3만 원에서 5만 원은 다 떨어졌어요. 빈방도 장난 아니게 많아요.”

20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서 만난 한 부동산 중계업소 직원의 설명이다. 5~6년 전만 하더라도 방이 없어 열악한 곳이라도 찾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는 옛말이다. 비교적 새 건물이고, 시설이 괜찮은 원룸의 월세는 연초만 해도 60만 원가량이었지만, 지금은 50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직원은 중개수수료도 깎아 주겠다고 귀띔했다.

노량진 인근 원룸과 고시원의 월세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다. 주거비와 식비에 부담을 느낀 공무원 시험 준비생(공시생)들이 노량진을 떠나는 데다, 인터넷 강의(인강) 대세가 굳어지면서 ‘노량진 유학길’에 오르는 공시생도 줄고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 학원 수강생의 감소는 '탈 노량진'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찰공무원 준비생인 이주호(27) 씨는 “예전에는 300명이 들어가는 강의실 5개가 꽉 찼다면 지금은 3개 정도에 불과하다. 학원마다 다르겠지만, 수강생이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는 다들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공시생이 줄면서 원룸 월세도 내렸다. 과거 2012년에도 원룸 월세는 지금과 같은 40만~45만 원선이었다. (홍인석 기자 mystic@)
▲공시생이 줄면서 원룸 월세도 내렸다. 과거 2012년에도 원룸 월세는 지금과 같은 40만~45만 원선이었다. (홍인석 기자 mystic@)

이미 공시생들 사이에서는 시험을 위해 ‘굳이’ 노량진을 찾을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다. 인강으로 공부하는 게 학원에서 듣는 강의와 별 다를 게 없다는 것. 공시생 최시은(28) 씨는 “요즘에는 실강(현장 강의)을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라며 “홍대에는 ‘실강 라이브’로 강의를 듣고 남은 시간에 자율학습을 지도하는 곳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최 씨는 이어 “노량진 학원비가 보통 10개월에 200만 원선인데 인강도 200만~240만 원 수준이라서 큰 차이도 없다. 노량진에 올라와 월세 내고 독서실 끊고, 식비 들이는 것보다 인강으로 시험을 준비하는 게 경제적으로 이익”이라고 덧붙였다.

▲상가 옥상에 지어진 원룸. '301호'인 이 방은 굵은 방범창이 시야를 가렸지만, 이만하면 다른 곳보다 좋은 환경이었다. (홍인석 기자 mystic@)
▲상가 옥상에 지어진 원룸. '301호'인 이 방은 굵은 방범창이 시야를 가렸지만, 이만하면 다른 곳보다 좋은 환경이었다. (홍인석 기자 mystic@)

노량진 공시생 감소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인근 원룸과 고시원이다. 유입이 줄고 공실이 많이 생기면서 더 좋은 주거환경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도 늘었다. 임대인들은 월세를 내리면서 새 임차인을 구하고, 떠나는 공시생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 중개업소 직원은 “위치가 나쁘거나 시설이 낙후된 원룸의 경우 얼마 전부터 월세가 10만 원 이상 떨어졌다"면서 "이제는 화장실이 딸린 시설 좋은 고시원보다 웬만한 원룸이 더 싸다"라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원룸 뿐만 아니라, 고시원도 생존을 위해 가격을 낮추고 있다. 역이나 번화가에 위치한 곳은 아직 예전 가격을 고수하고 있지만, 그 수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한 고시원은 34만 원이던 월세를 최근 31만 원으로 10%가량 내렸다. 기존 거주자들을 눌러 앉히려는 자구책이다. 해당 고시원 관계자는 "노량진을 찾는 공시생이 줄어드는 마당에 이전 가격을 유지했다간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며 "빈방으로 두는 것보다 월세를 낮춰 사람이 살게 하는 편이 훨씬 낫다"라고 어려움을 말했다.

▲기자가 찾은 또 다른 노량진의 한 원룸. 공간이 비좁아 침대 하나 놓을 자리도 없다. 월세는 40만 원. (홍인석 기자 mystic@)
▲기자가 찾은 또 다른 노량진의 한 원룸. 공간이 비좁아 침대 하나 놓을 자리도 없다. 월세는 40만 원. (홍인석 기자 mystic@)

이런 '탈 노량진' 바람으로 임차인인 공시생이 득을 보는 것 같지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슬럼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노량진 주민인 정모(75) 씨는 "집도 사람이 있어야 정리가 되는 법인데, 사람이 확 빠져나가면서 쓰레기나 낙후한 시설물이 방치되는 등, 거주 환경이 나빠지고 있다"라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임대인은 공실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임대료를 내리고 임차인은 저렴한 월세로 거주할 수 있는 효과가 생기지만, 임차인 수요 하락이 이어지면 주택관리가 미흡해지면서 주거 품질이 크게 낮아질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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