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금융완화 영향으로 수익성이 약하고 재무제표가 부실한 이른바 ‘좀비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좀비기업이 지난해 약 5300개사에 달했으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라고 11일(현지시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분석했다.
좀비기업은 영업이익이 이자 비용도 못 갚을 정도로 수익성이 악화한 기업을 뜻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0년 7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등 세계 주요 중앙은행이 금융완화를 더욱 강화해 좀비기업이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인 가운데 경제가 충격을 받으면 더욱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신문은 경종을 울렸다.
신문은 미국과 유럽, 아시아, 중국, 일본 등의 지역에서 상장사 2만6000개사(금융사 제외)의 재무 상태를 조사했다. 그 가운데 3년 연속 이자비용이 본업을 통해 수익을 내는 영업이익보다 많은 기업을 좀비기업으로 분류했다. 이들 좀비기업은 지난해 전체 상장사의 약 20%를 차지했다. 이 비율은 2008년 당시의 14%에서 높아진 것이다.
지역별로는 유럽이 1439개사로 가장 많았다. 미국은 932개사였지만 전체 상장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32%로 높았다. 낮은 신용등급 기업도 회사채 등을 발행하기 쉬운 금융환경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신문은 풀이했다.
아시아에서는 인도가 617개사로 가장 많았고 중국이 431개사, 한국이 371개사로 그 뒤를 이었다. 한국 좀비기업은 전체 상장사의 약 18.4% 수준이었다. 일본 기업은 채무 의존도가 낮아 좀비기업 수가 109개사로 비교적 적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업종별로는 의료·의약품과 비철, 에너지, IT 부문에서 좀비기업들이 눈에 띄었다. 예를 들어 미국 IT 대기업 델테크놀로지는 2016년 EMC를 인수한 여파로 부채가 급증하면서 이자 지급액이 영업이익을 웃돌고 있다. 노인 재활·장기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제네시스헬스케어도 인수·합병(M&A)을 반복한 결과 부채가 늘어나 2014년 이후 ‘좀비 상태’에 빠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들이 돈을 풀면서 기업들의 재정 규율도 해이해졌다는 평가다. 글로벌 기업의 ‘지출’이 ‘돈벌이’보다 많은 상태가 8년째 이어지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설비투자나 M&A 등 투자 현금흐름과 배당·자사주 매입이 총 6조 달러(약 7272조 원)로, 사업으로 벌어들인 현금을 나타내는 영업 현금흐름을 1조 달러 가까이 웃돌았다.
이에 반드시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부채인 ‘유이자부채’는 지난해 20조 달러로 10년 새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금리 하락으로 금융기관과 투자처 등의 대출 관련 규율이 완화하면서 기업들이 많은 부채를 안고 있어도 연명할 수 있게 됐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부채 이율은 평균 3.9%로, 10년 전보다 약 1%포인트 낮아졌다. 그럼에도 빚이 급증한 영향으로 같은 기간 기업들의 지급이자는 8000억 달러로 40%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좀비기업이 늘어나면 패자의 퇴출을 재촉하는 시장 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경기침체로 실적이 나빠지면 금리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기업들이 훨씬 많아질 것이라는 의미다.
금융완화로 금리를 전반적으로 억제해도 시장 경계심이 커지면 좀비기업의 조달금리가 올라 자금난이 일어날 수 있다. 그만큼 세계 경제가 안게 되는 리스크도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