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매운동에 발맞춰 편의점 본사 차원에서 일본 맥주를 할인 행사에서 제외하는 강수를 뒀지만, 일부 편의점주들은 여전히 일본 맥주를 정가보다 싸게 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건비 상승에 재고 비용 부담까지 겹친 일부 가맹점이 판매가를 낮춰 판매에 나서는 것. 편의점주들은 일본 맥주 반품을 본사가 받아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편의점 업체는 수용하기 어렵다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불매운동이 장기화하면서 국내 자영업자들이 영업상 손해를 보는 불매운동의 그림자가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GS25, CU(씨유),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등 편의점 업계는 일제히 ‘맥주 4캔에 1만 원’ 행사에서 일본 제품을 제외하기로 했다. 대신 CU는 국산 맥주인 카스와 클라우드를 행사에 넣고, 에비스 등 5개 일본 제품에 대해서는 발주 자체를 중단하기로 했다. GS25는 일본 기업이 소유한 코젤과 필스너우르겔 등의 판촉을 중단해 소비자들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편의점주들은 일본 맥주 행사 제외 정책에 적극 공감하고 있다. 일부 편의점에서는 자체적으로 일본 맥주를 냉장고에서 철수하고, 이예 팔지 않는 곳도 많았다. 하지만 유통기한이 가까워져 악성 재고로 전락하는 일본 맥주를 보며 속앓이를 하는 점주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싼 값에 일본 맥주를 팔고 있는 일부 편의점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프랜차이즈 편의점에서는 한 캔에 3000원짜리 산토리 맥주를 캔당 2200원에 팔고 있다. 이 매장에서는 3500원짜리 일본 맥주인 오키나와(일본명 오리온) 역시 캔당 3300원에 팔고 있다. 매장 직원은 “유통기한이 가까워지고, 비싸서 잘 팔리지 않는 맥주들”이라면서 “갑작스런 결정에도 불구하고 본사가 반품을 받아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싸게 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편의점은 본래 7~ 8월 동안 4캔당 1만 원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지만, 일본 불매 운동으로 인해 갑자기 이달부터 일본 맥주를 제외시켰다. 특히나 가맹점들은 여름철 맥주 수요에 대비해 편의점 맥주 판매 1위인 아사히 제품 재고를 가장 많이 쌓아놨다. 점포별로 차이가 있지만 창고에 남은 일본 맥주는 점포당 100~300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맥주 대신 다른 수입 맥주 바코드를 찍는 방식으로 일본 맥주를 할인 판매하는 가맹점도 일부 등장했다. 편의점가맹점주협의회 관계자는 “그런 점포가 많지는 않다”면서도 “점주들이 갑작스런 행사 중단에 손해를 보면서도 미리 쌓아둔 재고를 털어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맥주의 경우 제품 이상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본사에서 반품을 받아주지 않다 보니 일본 제품 불매 운동과 행사 제외에 따른 손해는 고스란히 점주의 비용이 된다. 이에 따라 본사가 반품을 받아줘 가맹점의 재고 부담을 나눠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특히 편의점주들은 ‘4캔에 1만 원’ 행사에서 일본 맥주를 제외한다는 사실이 미리 고지되지 않은 채 갑자기 이뤄져 재고 처리가 더욱 곤란해졌다고 하소연한다. 편의점 가운데 가장 먼저 일본 맥주를 행사에서 제외하기로 한 GS25는 열흘가량 전에 가맹점에 공문을 내려 점주의 재고 관리에 대비했지만, 다른 편의점들이 부랴부랴 GS25를 뒤따르면서 점주들의 대처가 더욱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청주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말은 불매운동이라고 하는데 본사가 반품을 받아주지 않아 실제로는 매가를 인하해 파는 곳도 있다”면서 “일본 맥주 행사 제외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았고, 본사 공지는 이튿날 받았다. 200개 가량 되는 재고를 그냥 버리란 말인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편의점 본사는 점주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편의점 본사 관계자는 “일본 맥주를 할인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지만, 가맹점에서 자체적으로 판매가를 조정해서 파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며 “사실 편의점 점포 창고는 매우 협소해 재고가 많지 않고, 매일 발주하는 시스템으로 가맹점이 부담해야 하는 몫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