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인공지능(AI)과 인간의 존엄성

입력 2019-08-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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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테르텐 대표

지인들과 모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영화 얘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급기야 각자 한 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써보기로 했다. 원고지도 펜도 없이 와인 잔들이 놓인 테이블 위에 팔을 괴고 잠시 생각에 잠긴 필자가 일필휘지(一筆揮之) 대신 즉상휘지(卽想揮之)로 만들어 낸 시나리오는 이랬다.

때는 2050년, 전투로봇 개발 분야 공학자인 리처드와 인공지능(AI) 최고 전문가인 클레르는 사랑하는 사이다. 어느 날 리처드가 만든 전투로봇이 훈련 중 해킹되면서 그를 공격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 결과 뇌를 포함해 신체 전반에 심한 손상을 입게 된다. 리처드와 클레르는 의료진과 협의 후 리처드 뇌의 모든 데이터를 컴퓨터로 백업받아 AI 알고리듬을 사용해 부분부분 손실된 기억 및 뇌 회로를 복구하는 시도를 한다. 또한, 리처드의 DNA 정보와 로봇 외골격 기술을 활용해 손상된 신체를 복구하기 시작한다.

수술 후 완벽에 가깝게 회복된 신체 기능과는 달리 뭔가 달라진 리처드를 눈치챈 클레르는 AI 알고리듬이 완벽한 기억 및 지능 복구에 실패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클레르는 리처드의 원래 모습을 찾기 위해 다시 뇌에 저장된 데이터를 백업받아 더 차원 높은 AI 알고리듬을 이용해 손실된 기억과 지능을 되찾는 노력을 한다. 하지만 AI가 생성한 새로운 데이터를 뇌로 다운받는 기술적 시도를 반복할수록 리처드는 다중인격자가 되기 시작한다.

근원적으로 자신이 누구였는지 고민하기 시작하는 리처드, 슈퍼컴과 세계 최고 수준의 AI 기술을 이용해도 100% 복구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어떤 부분을 깨달은 클레르. 그 두 사람은 AI가 생성할 수 없는 리처드의 본질적, 근원적 일부를 찾기 위해 티베트로 향한다. 그것만 찾아 업로드하면 예전의 리처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기에. 여러분들이라면 이 영화의 결말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사상혁명이자 시민혁명이다. 1% 남짓한 소수의 권력자들이 신분제를 이용해 나머지 99%의 일반 평민들 위에 군림하며 자유를 억압하고 경제를 수탈했다. 그리고 이에 저항해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보유하기 위해 시민들이 봉기했다. 그 과정에서 50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뉴질랜드의 케이트 셰퍼드란 여성은 1888년 여성 투표권 도입을 의회에 요구한다. 그러나 의회의 대답은 ‘NO’. 이어 1891년 9000명의 서명이 담긴 청원서를 제출했으나 거절. 1892년에는 2만 명의 서명을 받은 청원을 의회로 올렸으나 상원에서 거부.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1893년 뉴질랜드 백인 성인 여성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만2000명의 서명이 담긴 청원을 제출한다. 그리고 마침내 뉴질랜드의 여성들을 통해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를 배출한 미국의 1950년대와 60년대는 온갖 박해 속에 피폐한 삶을 살던 흑인들의 민권운동이 시작된 시기이다. 1955년 로자 파크스라는 평범한 여성이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백인에게 버스 앞자리 양보를 거부하다 체포된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끄는 흑인들의 조직적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이 테러 위협 속에 381일 동안 지속된다. 그 결과 공공시설의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연방 민권법이 탄생된다.

신분차별, 남녀차별, 인종차별과 같이 역사 속에서 진행되어온 인간 존재에 대한 의식 진화 과정을 돌아보면 AI에게는 없는 신념과 가치 그리고 그것을 어떤 두려움 앞에서도 지켜내겠다는 인간의 의지와 결의가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은 인간의 존엄성이 있었다.

다시 돌아와 필자의 영화 마무리는 이러했다. 어느 날 리처드는 클레르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클레르, 나의 기억과 지능은 분명 예전과 같지 않지만, 설명하기 힘든 변함없는 무언가가 느껴져. 어쩜 이것이 영혼인지도 몰라. 기억나지 않는 과거는 그냥 과거로 남겨 두고 싶어. 좋지 않은 머리로 뭘 하든 예전만 못하겠지. 근데 내 영혼이 변함없이 간직해 주어서 고마운 게 있어. 그것이 기억에도 지능에도 의존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건…. 그건…. 널 진심으로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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