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정년퇴직 당일 출장 중 사고로 사망하더라도 공무상 순직으로 볼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퇴직의 효과는 24시가 아닌 0시에 발생해 이후부터는 공무원이 아니라는 취지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함상훈 부장판사)는 사망한 초등학교 교장 A 씨의 부인이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유족 보상금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A 씨는 배구부 학생들의 전지훈련에 인솔 교사가 참여할 수 없게 되자 본인이 동행하기로 했다. 전지훈련은 2018년 2월 28일까지로 이날은 A 씨의 정년퇴직일이었다. A 씨는 이날 오후 1시쯤 전지훈련에 참여한 코치ㆍ학생과는 따로 본인의 승용차를 타고 학교로 돌아가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A 씨의 부인은 공무원연금공단에 순직 유족 보상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2월 28일 0시에 공무원 신분이 소멸해 공무원연금법상 공무상 순직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지급을 거절했다. 이에 불복한 A 씨의 부인은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에 심사를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이후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정년퇴직 효과의 발생 시점을 0시로 판단했다. 교육공무원법에 의하면 임용에는 신규 채용뿐만 아니라 면직이 포함되고 교육공무원임용령에 따르면 임용장에 기재된 일자에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면직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A 씨가 27일에서 28일로 넘어가는 순간 공무원의 신분을 상실한 상태이고 사망한 시각에는 공무원이 아니어서 재직 중 공무상 사망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A 씨의 부인은 "정년을 몇 시간 연장해도 정년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며 평생 교육 발전에 이바지한 망인과 유가족에게 가혹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국가공무원법은 근무조건 법정주의를 채택하기 때문에 공무원 신분의 시작과 종료 시점은 법률에 따라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년 이후 언제까지 연장이 가능하냐는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망인의 안타까운 사정 보다 헌법 등에 따른 법정주의를 유지해야 할 공익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부는 "과연 망인이 퇴직 이후 학생들의 인솔 업무를 수행하다 학생에게 발생한 사고 등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면 교사로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인지도 의문이다"며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으로서의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