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하순 대내외 중앙은행들의 행보가 숨돌릴 틈 없이 바삐 돌아가고 있다. 그 기저에는 미중 무역분쟁과 세계교역둔화, 이에 따른 각국의 경제성장 부진이 자리하고 있다. 또 주요국들 사이에서는 자국 통화를 약세로 유도해 경제부진과 저물가를 타계하고자 하는 소위 통화전쟁 양상까지 확산할 조짐이다.
한은도 이달(7월) 3년1개월만에 금리인하를 단행하면서 경기부양 의지는 물론이거니와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완화기조에 동참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채권시장을 중심으로 연내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다만 급박했던 최근 흐름 와중에서도 키워드는 역시 정책여력과 보험성인하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정책여력이 많지 않은 한은 입장에서는 추가 인하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글로벌 완화기조에 동참하더라도 보험성인하나 통화전쟁 추세라면 마냥 따라갈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간의 금리인하가 긍정적 경제효과보다는 부동산발 가계부채 급증, 양극화 심화, 좀비기업 연명 등 부작용이 컸다는 점에서 이번의 금리인하 효과 역시 의문이 많다. 가급적 잠재성장률이나 중립금리 수준 내지 그보다 살짝 낮은 수준에서 통화정책을 운용하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허송세월했던 구조개혁을 촉구해야한다. 그래야 2000년대 들어 빠르게 떨어지기만 하는 잠재성장률을 반등까지는 아니더라도 추가하락은 저지할 수 있을 것기 때문이다.
최근 한은의 통화정책을 두고 가장 많이 언급된 말은 단연코 ‘정책여력’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연 1.50% 기준금리는 역사적으로 가장 낮았던 연 1.25%에 불과 한 걸음(25bp, 1bp=0.01%포인트) 보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참고로 한은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통상 소위 베이비스탭이라 해서 한번에 25bp씩 금리를 인상하거나 인하하는 등 조정해오고 있다). 또, 명목상 제로금리(0%)까지 낮추는데 부담이 없는 선진국과 달리 자본유출 우려 등으로 금리하한이 선진국보다 높다는 게 이 총재와 한은의 입장이라는 점에서 과연 얼마나 더 내릴 수 있겠느냐는 의문은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라 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 하락도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잠재성장률이란 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가용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창출할 수 있는 성장률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선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면 통상 실제 국내총생산과 잠재성장률간 격차를 의미하는 국내총생산격차(GDP갭)에 변화가 생긴다. 국내총생산이 잠재성장률보다 높을 경우엔 플러스 폭을 키우고, 낮을 경우엔 마이너스 폭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반면 잠재성장률이 낮아지면 중립금리 수준이 낮아진다. 전자를 중시할 경우엔 금리인하 명분이 떨어지는 반면, 후자를 중시하면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높인다.
한은은 7월 금통위에서 2.8~2.9%로 추정했던 2010년대 후반(2016~2020년) 잠재성장률을 2.7~2.8%로 낮췄다. 특히 2019~2020년엔 2.5~2.6%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 5월 한은이 추정한 GDP갭률 마이너스폭을 줄이기 충분하다. 당시 추정한 GDP갭률은 올 상반기 마이너스(-)0.51%, 올 하반기 -0.08%, 내년 상반기 -0.25%, 내년 하반기 -0.22%였다. 다만 7월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2.5%→2.2%)와 내년(2.6%→2.5%) 성장률 전망치를 또 낮췄다는 점에서 한은이 8월초 발표할 GDP갭률 변화 추이를 점검해 볼 필요는 있겠다.
이주열 총재는 이에 대한 즉답을 회피한 바 있다. 18일 금통위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와 관련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이(잠재성장률) 발표를 통화정책과 연관시킬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한은의 한 금통위원은 “잠재성장률 하향은 추가 금리인하 명분을 낮추기도 하지만 높이기도 한다. 어느 쪽에 중심을 두는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보험성인하란 이례적으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실제 경제·금융 상황 악화로 이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위험관리 차원에서 현 경제상황에 적합한 수준 이하로 금리를 미리 인하하는 정책을 뜻한다.
최근 한은 뉴욕사무소가 내놓은 동향분석 자료에 따르면 연준이 보험성인하를 단행하더라도 과거와 같이 3번까지는 아닐 것이란 관측이다. 각각 3회에 걸쳐 총 75bp씩 인하했던 1995년과 1998년 보험성인하 당시와 달리 미국 경제지표가 상대적으로 양호하기 때문이다.
실제 올 2분기(4~6월) 실질 경제성장률(GDP)은 전기대비 연율 환산으로 2.1%를 기록했다. 3.1%를 기록했던 1분기보다 크게 떨어졌지만 시장 예측치보다 높은 수준이다. 아울러 개인소비는 4.3% 증가해 1년6개월여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소비증가율은 양호한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1995년은 대내외 경제지표 부진이 가시화되며 성장 우려가 부각되는 상황이었고, 1998년은 아시아 외환위기와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등 불확실성이 이례적으로 높아지고, 구매관리협회(ISM) 제조업 등 일부 지표가 부진했었다.
연준 금리인하 속도가 생각보다 완만하다면 한은 역시 추가 인하에 대해 속도조절을 할 가능성이 높다. 연준 통화정책이 미치는 영향력이 아무래도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7월 금통위 금리인하를 두고 일각에선 선제적이라고 말하지만, 7월말 FOMC 금리인하 가능성이 기정사실화한 것도 한은 입장에서는 부담을 더는 요인이 됐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주열 총재도 6월20일 연준 통화정책과 관련해 “기계적으로 따라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늘 같은 답변이다. 연준 변화는 우리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영향을 미친다. 늘 고려해 의사결정을 한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