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미국 전자업계가 적극적으로 두 나라에 화해를 촉구하고 나섰다.
미국 6대 IT 관련 협회가 유명희 한국 통상교섭본부장과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에게 한일 분쟁 해소를 촉구하는 공동 서한을 보냈다고 2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퀄컴과 인텔 등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와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컴퓨팅기술산업협회(CompTIA), 소비자기술협회(CTA), 정보기술산업협회(ITI), 전미제조업자협회(NAM)등이 서한에 동참했다.
이들은 서한에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일본의 대한국 수출 규제로 촉발된 한일 양국의 긴장을 억제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한일 분쟁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반도체 업체들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 기업의 메모리 반도체 등 전자기기에 필수적인 부품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 정교하게 짜인 글로벌 공급망이 전복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들 협회는 서한에서 “한국과 일본 모두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수출관리정책에 있어서 불투명하고 일방적인 변화는 공급망 중단과 선적 지연, 더 나아가 국내외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들과 그들이 고용한 근로자들에게 장기적인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는 이들 협회의 서한이 적정한 시기에 보내졌다고 평가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일본을 거쳐 23일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또 이날은 일본이 한국을 수출절차 간소화 특혜를 주는 우방국가인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하는 것과 관련해 공청회를 연다. 한일 양국은 전날 시작된 이틀간의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서도 수출 규제를 놓고 공방을 벌인다. 해당 안건은 이날 논의될 예정이다.
한편 미국 CNBC방송은 전날 한일 분쟁으로 중요한 글로벌 반도체 생산 공급망이 혼란에 빠지면서 차세대 스마트폰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고 경종을 울렸다.
일본은 수출 규제 품목들에서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어서 한국 기업들이 대안을 찾기가 어렵다. 그 결과 삼성과 SK하이닉스 등이 납기를 지키지 못하면 그들의 고객사인 미국 애플과 중국 화웨이테크놀로지 등 기술 대기업들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CNBC는 거듭 강조했다.
수출 규제 3개 품목 중 일본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리지스트에 대해서는 전 세계 생산의 약 90%를, 고순도 불화수소는 70%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4일 규제를 발동하면서 이들 소재가 반드시 개별적인 수출 허가를 거쳐야 해 납기가 약 90일이 걸리게 됐다. 리서치 업체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한국 업체들이 대안을 찾는다 하더라도 품질 이슈나 불충분한 공급 등으로 생산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IHS마르키트는 “수출 규제가 장기화하면 전 세계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미국과 중국 전자업체 모두 한국의 보급품에 의존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시 고통을 느낄 것이다. 한국 외에 다른 메모리 공급업체가 전 세계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어 부품 가격이 급등해 서버와 스마트폰, PC 등 다양한 최종 제품이 영향을 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다음 달 한국을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하면 약 850개 품목이 수출 규제 강화에 걸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