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경제] '운동화 덕후' 엄승현·승체스 씨 "1억 썼지만…짜릿함 더 커요"

입력 2019-07-22 18:19 수정 2019-07-2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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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복, 나이키 특정 품목만 수백 켤레…한정판 당첨 로또보다 더 원해

(출처=K STAR '리폼쇼 리얼하게폼나게')
(출처=K STAR '리폼쇼 리얼하게폼나게')

[덕후의 경제]는 세상에 존재하는 건강한 덕후들을 통해 해당 산업을 조망하는 코너입니다. 덕질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 더불어 ‘덕후’의 삶도 전하겠습니다. 주위에 소개하고 싶은 덕후가 있다면 언제든지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속옷만 입은 상태로 슈즈룸에 와서 그날 신고 싶은 '아가(구두)'를 선택한답니다. 구두에 맞춰서 옷을 골라 입죠." (쥬얼리 출신 서인영)

걸그룹 쥬얼리 출신의 서인영은 자타공인 구두 애호가로 유명하다. 과거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서인영의 슈즈룸을 공개했는데, 마치 백화점처럼 방 한 칸을 가득 채워 진열된 모습이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외출할 때 옷을 먼저 고르고 거기에 맞춰 신발을 선택하는 것과 달리, 서인영은 그날 신고 싶은 구두를 먼저 고르고 옷을 매칭한다고도 밝혀 그녀의 '구두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인증했다.

서인영은 다양한 종류의 구두를 수집했다. 베이지힐, 메리 제인 슈즈(발등에 스트랩이 있고 앞코가 둥근 구두), 킬힐, 베이직한 구두를 비롯해 복고풍의 구두와 캐주얼 부츠, 다양한 운동화까지….

하지만 서인영과 달리 한 종류의 브랜드 운동화만 수집하는 덕후도 있다. 일명 '리복 퓨리 마니아' 엄승현(29) 씨와 '나이키 마니아' 승체스(한국명 정승연ㆍ28) 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각각 한 브랜드의 운동화를 수집하고 있다. 집안은 마치 신발가게를 방불케 할 정도. 이들의 수집광은 어떻게 시작됐고, 왜 하나의 브랜드만을 고집한 것일까.

▲엄승현 씨는 "고등학교 때 발볼이 넓어서 아무 신발이나 신을 수 없었던게 '리복 퓨리' 덕후가 된 계기"라고 말했다. (이재영 기자 ljy0403@)
▲엄승현 씨는 "고등학교 때 발볼이 넓어서 아무 신발이나 신을 수 없었던게 '리복 퓨리' 덕후가 된 계기"라고 말했다. (이재영 기자 ljy0403@)

◇'리복 퓨리 덕후' 엄승현 씨 "신발 수집 덕분에 효도했죠"

춘천에서 제약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엄승현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리복 퓨리' 제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가 10년간 모은 신발만 대략 300켤레. 돈으로 환산하면 5000만 원이 넘는다.

대체로 운동화 수집광이 나이키 '에어조던' 시리즈나 아디다스 '이지부스트', 컨버스 시리즈 등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리복 퓨리 시리즈를 수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고등학교 때 유독 발볼이 넓어서 운동화가 불편했는데, 그때 우연히 리복 퓨리 신발을 만났어요. 편하고 멋있고 하다 보니 리복 퓨리 신발을 수집하는 게 취미가 됐어요."

그는 리복 퓨리에 푹 빠진 나머지 자신의 직업도 관련 업계로 고민했다. 20대 초반에 스포츠 브랜드 매장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손님들에게도 퓨리 제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발볼이 넓은 사람이나, 어르신들에게 편안하게 신을 수 있는 운동화로 적극 추천했어요. 사실 리복 퓨리 제품이 잘 팔리지 않아서 재고로 많이 쌓여있는 제품이긴 했어요. 그런데 손님들에게 이 운동화를 권하고 홍보했더니 재고가 없을 정도가 됐죠. 당시 사장님과 본사에서도 무척 좋아했어요."

엄 씨는 자신의 '운동화 수집' 취미가 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벨트, 할아버지는 모자 수집이 취미였다.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벨트와 모자를 모으는 것을 보면서 저도 뭔가 수집욕이 생긴 것 같아요"라며 "이런 운동화 수집 취미를 통해서 자기만족과 삶의 원동력을 얻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엄 씨는 10년 전 미래의 아이를 위해 산 신발을 지금 자신의 아이에게 신겼을 때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엄승현 씨)
▲엄 씨는 10년 전 미래의 아이를 위해 산 신발을 지금 자신의 아이에게 신겼을 때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엄승현 씨)

엄승현 씨는 남다른 '운동화 수집'으로 통해 다양한 부수입도 얻었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취미왕'을 공모해서 상품권을 주는 이벤트를 벌였는데 아내가 참여를 적극 권했단다.

"결국 취미왕에 뽑혔고, 상품권도 받았죠. 당시 이벤트에 참여하려고 운동화를 모두 상자에서 꺼내 보니 만만치 않더라고요. 너무 많다 보니 정리도 일이에요."

그는 운동화 수집으로 할머니에게 효도도 했다고 말했다. 엄 씨는 "할머니가 겨울에 구스다운 패딩을 입고 싶어하셨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았어요. 아버지도 굳이 시골에 계시면서 구스다운 패딩이 필요 있냐고 하셨는데 제가 어떻게든 사드리고 싶었죠"라며 "제가 가장 아끼던 운동화가 있었는데 할머니의 패딩을 구매하려고 88만 원에 팔았어요. 그 돈으로 패딩을 사드렸더니 할머니가 무척 좋아하시더라고요"라고 전했다.

당시 그가 판매한 제품은 리복 '겐조 퓨리' 제품이다. 고가인 만큼 그가 가장 아낀 제품이었는데, 팔고 나서도 계속 생각이 났다고 한다. 결국 결혼을 한 뒤 여유가 생기자 '겐조 퓨리' 모델을 다시 수소문했다. 88만 원에 팔았던 신발을 그는 6년 뒤 130만 원에 다시 샀다. 지금 그가 소장하고 있는 운동화 중 가장 비싼 모델이다.

▲수집은 판매로도 이어진다. 엄 씨는 신발을 팔아 할머님이 소원하던 구스다운 패딩도 선물했다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재영 기자 ljy0403@)
▲수집은 판매로도 이어진다. 엄 씨는 신발을 팔아 할머님이 소원하던 구스다운 패딩도 선물했다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재영 기자 ljy0403@)

엄승현 씨가 '운동화 수집'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10년 전 리복 퓨리를 수집하면서 유아용도 함께 나오는 모델도 발견했어요. 운동화를 사면서 같은 모델이지만, 아기들이 가장 많이 신는 120~150mm 제품도 함께 샀죠. 지금 제 아이가 120mm 운동화를 신어요. 10년 전 미래의 아이를 위해 샀던 신발을 지금의 내 아이가 신는 것을 보니 감동적이더라고요. 조금 더 자라서 140~150mm 운동화도 신게 되면 기쁨도 더 커질 것 같아요."

그는 최근 한정판 운동화가 늘어나면서 리셀러(물건을 사서 곧바로 이익을 위해 되파는 사람)도 많아지는 데 대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그는 "새 제품을 구매해서 웃돈을 주고 곧바로 팔아 차익을 가지려는 것인데, 운동화 업체들이 선착순보다는 추첨제로 판다면 좀 더 공정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고 의견을 말했다.

▲나이키 마니아 승체스 씨는 한 번 쇼핑할 때 여러 켤레를 한 번에 구입하는 스타일이다. (사진제공=승체스)
▲나이키 마니아 승체스 씨는 한 번 쇼핑할 때 여러 켤레를 한 번에 구입하는 스타일이다. (사진제공=승체스)

◇승체스 "내 별명은 '신발새끼'…덕질의 이유는 짜릿함 때문"

"나이키 덩크, 에어포스, 조던 시리즈를 모으고 있는데 어느새 350켤레가 넘었네요. 아마도 운동화 수집에만 1억 원가량 쓴 것 같아요."

미국 LA에 거주 중인 승체스 씨는 '운동화 덕후계'의 정통 나이키 덩크, 에어포스, 조던 시리즈를 모으는 수집광이다.

어릴 때부터 포켓몬 빵 스티커, 딱지, 레고 등을 모으는 것으로 시작해 재미와 성취감을 느꼈다는 승체스 씨. 힙합에 빠지면서 자연스레 패션 쪽에 관심을 두게 됐고, 나이키 덩크나 에어포스 종류를 주로 신게 됐다. 이후 한정판에 관심이 생기면서 본격적인 운동화 수집이 시작됐다.

▲승체스 씨가 모은 신발은 수 백족이 넘는다. 같은 신발도 있고 다른 신발도 있다. (사진제공=승체스)
▲승체스 씨가 모은 신발은 수 백족이 넘는다. 같은 신발도 있고 다른 신발도 있다. (사진제공=승체스)

그의 수집 영역은 운동화를 넘어 다른 품목으로 확장하고 있다. 나이키 덩크, 에어포스, 조던 시리즈를 주력으로 모으지만, 지금은 극 한정판 및 스트리트 브랜드 의류도 함께 모으고 있다.

그가 최근 눈을 돌린 것은 슈프림(Supreme), 베이프(Bape), 팔라스(Palace Skateboard) 등 스트리트 기반의 브랜드와 이들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 한 의류들이다. 슈프림 액세서리와 크롬하츠 반지도 최근 승체스 씨가 눈여겨 수집하는 제품들이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라고 한다.

"일부는 저를 향해 '아 특이한 옷을 좋아하는구나', '옷이나 신발에 관심이 많구나'라고 생각하지만, '왜 저 옷을 저 금액을 주고 사서 입는 거지?', '내 눈엔 안 이쁜데 괜히 비싸다고 허세를 부리는 것 아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요. 하지만, 아무래도 '부럽다, 어떻게 살 수 있는 거냐'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이 더 기억에 남죠."

▲꾸준한 신발 수집에 보관이 어려워 지면서 승체스 씨는 신발 창고를 하나 마련해야 할 지 고민 중이다. (사진제공=승체스)
▲꾸준한 신발 수집에 보관이 어려워 지면서 승체스 씨는 신발 창고를 하나 마련해야 할 지 고민 중이다. (사진제공=승체스)

운동화와 의류 수집에 쓴 1억 원가량을 그는 어떻게 모았을까.

"사실 제 주변에서도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기도 해요. 운동화를 모으면서 좋았던 것 중의 하나가 돈을 벌면서 수집도 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부족한 돈은 전에 사들인 운동화나 옷을 팔아 충당했죠. 제가 유학생 신분이라 OPT 프로그램(Optional Practical Trainingㆍ미국 대학 졸업 후 1년간 현장 취업 실습 제도)으로 일할 때는 회사에 다닐 수 있어서 당시엔 더 여유로웠고, 그만큼 더 공격적으로 사들였죠."

승체스 씨는 나이키 덩크, 에어포스, 조던 시리즈를 수집하면서 적은 돈이 들어간 게 아닌 만큼, 다른 것을 할까 흔들렸던 적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아직 크게 흔들린 적은 없었지만, 비트코인이 1만9000달러대로 올라갔을 때 살짝 운동화 수집보다는 가상화폐에 투자해야 하나 싶어 좀 고민을 했죠." (웃음)

승체스 씨는 왜 '나이키 운동화' 덕질을 꾸준히 하는 것일까.

"한정판 운동화를 사기 위해 추첨권을 넣으면 로또 당첨보다도 더 간절함을 가지게 돼요. 물론 당첨됐을 때 그 짜릿함은 말로 표현하기가…(웃음). 한정판 구매에 성공한 뒤 집에 오는 발걸음은 그야말로 날아갈 것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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