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설령 잉크를 잘못 넣었다 하더라도 경유차에 휘발유를 넣어 엔진을 통째로 바꿀 정도의 사고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잘 모르겠다 싶으면 만년필 회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 회사의 잉크를 넣으면 된다. 다만 그 회사의 잉크라도 섞이는 것은 좋지 않다. 예를 들면 파랑을 넣고 다음은 검정, 그다음엔 빨강 이런 식이면 결정(結晶)이 생겨 잉크가 나오는 길이 막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잉크를 넣는 방법은 아무리 손재주가 없다 하더라도 식은 죽 먹기다. 잉크병에 펜촉을 담그고 꼭지를 돌리고 다시 잠그면 잉크가 들어간다. 그런 다음 넘침을 방지하기 위해 잉크 한 두 방울을 떨어트린 후 다시 잠가 주는 방법이 있긴 한데, 휴지로 깨끗이 닦아주면 그럴 필요까진 없다.
이렇게 만년필에 들어간 잉크는 충전 방식에 따라 1~2㎖가 된다. 잉크 1㎖로 5500자(字) 정도를 쓸 수 있는데, 이것은 33줄 노트로 약 7페이지가 된다. 그러니까 하루에 한 페이지 식 필기를 하면 한 번 충전에 1주일 또는 2주일 동안 종이 위를 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만년필 회사들도 약 50주인 일 년 동안 사용할 수 있게 잉크 한 병에 50~60㎖ 담는다. 참고로 파커는 잉크 한 병의 용량이 57㎖, 셰퍼와 워터맨, 라미, 세일러는 50㎖, 몽블랑과 플래티넘은 60㎖, 펠리컨은 62.5㎖다.
그렇다면 세차 아니 세척은 얼마 만에 해야 할까? 자동차 세차도 너무 자주하면 좋지 않은 것처럼 만년필 세척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마다 그 지침이 달라 딱히 정해진 기간이 없는데 보통 3개월에 한 번 정도가 적당하다.
많은 사람들이 세면기의 흐르는 물에 펜촉을 씻고 물기를 없애려 만년필을 탁탁 터는데, 이런 경우 갑자기 펜촉이 빠져 세면기에 부딪히는 일이 꽤 많다. 미지근한 물을 사용하는 것은 너무 차거나 뜨거운 물은 손잡이 등이 열에 의해 변형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두 개의 컵 중 하나를 선택하여 펜촉을 담구고 흔들어 잉크를 풀어준 다음 잉크를 넣듯이 물을 넣고 빼는 것을 2~3회 반복하고, 깨끗한 물이 담긴 다른 컵에 한 번 더 헹궈주면 된다. 남은 물기는 휴지나 헝겊으로 닦아주면 끝이다.
삼복더위에 휴가철이다. 이번 휴가엔 뜨거운 아스팔트 위 자동차 안보다는 필사(筆寫)하기 좋은 책 한 권을 고르고 만년필에 푸른 잉크를 넣어 흰 종이 위를 달려 보는 것을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