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대표는 전날인 13일 오후 치러진 당내 선거에서 83.58%의 득표율로 양경규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을 물리치고 새 당 대표에 당선됐다. 심 대표는 이날 당 대표 선출 직후 “더 이상 정의당을 ‘범여권’으로 분류하지 말아달라. 정의당은 정의당의 길을 갈 것”이라며 “정의당 노선에 따라 (여당에)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겠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그간 한국당 등 보수야당으로부터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을 들으며 정부·여당의 정책 기조에 협력했지만, 앞으로는 이와 같은 관계설정에 변화를 주겠다는 이야기다.
심 대표는 내년 총선과 관련해서도 “후보 단일화는 우리 당의 원칙이 아니다”라며 민주당과의 선거연대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는 “집권 경쟁에 당당히 나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한국 정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자유한국당을 역사의 뒤안길로 퇴출시키고, 집권 포만감에 빠져 뒷걸음치는 민주당과 개혁 경쟁을 넘어 집권 경쟁을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민주당과 정의당은 지난 20대 총선은 물론 지방선거, 4·3 보궐선거에서도 단일화를 통해 보수·진보진영 간 일대일 구도를 만들며 공조해 왔다. 하지만 다음 총선에서는 후보 단일화를 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지역구에 독자 후보를 출마시키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렇게 되면 작은 득표율로 승부가 갈릴 수 있는 부산·울산·경남(PK)이나 수도권 일부 지역의 경우 ‘보수 단일 후보’와 ‘복수의 진보진영 후보’의 싸움이 되면서 민주당이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심 대표의 강경한 발언은 지난달 28일 민주·자유한국·바른미래당 등 여야 교섭단체 3당의 간 합의로 정개특위 위원장직을 내려놓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심 대표는 “한국당이 (선거제 개혁 법안의) 6월 말 의결과 8월 말 의결을 막기 위해 심상정을 해고한 것”이라며 “그 해고에 합의한 민주당에게 선거제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아직 듣지 못했다. 선거제 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너무 늦지 않게 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여야 정당은 14일 일제히 심 대표의 취임과 관련해 제각각 논평을 냈다. 각 당은 축하의 뜻을 전하면서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강조하는 지점이 엇갈렸다.
민주당은 이재정 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심상정 신임 대표께는 축하를, 이정미 전임 대표께는 박수를 보낸다”며 우호적인 메시지를 건넸다. 이어 이 대변인은 “심 대표는 당선 일성으로 ‘민주당과 개혁 경쟁을 넘어 집권 경쟁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며 “국민을 향하고 국민을 위하는 선의의 경쟁이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은 ‘민주당과 정의당의 관계’에 초점을 뒀다. 이종철 대변인은 논평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복귀를 축하한다”며 “위기에 처한 우리 경제의 현실과 우리 민주주의의 후진성을 고려할 때 어느 때보다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 촌철살인의 비판과 다양한 목소리가 중요해졌다. (민주당과의) 야합 없는 정의당 심 대표의 바른 길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민주평화당은 심 대표를 향한 축하와 함께 정의당을 향해 선거제 개혁안 등 개혁과제 추진을 고리로 하는 연대를 제안했다. 박주현 수석대변인의 논평에서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20대 국회 마무리를 앞두고 1차 선거제 개혁을 완수하고 분권형 개헌과 국민소환제를 본궤도에 올려놓는 것에 평화당과 정의당이 다시 한번 ‘개혁선도연대’를 가동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한국당은 대변인이 아닌 부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냈다. 내용에서도 심 대표가 취임 연설에서 “한국당을 역사의 뒤안길로 퇴출시키겠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장능인 부대변인은 “국회 제1야당을 퇴출의 대상으로 보는 ‘냉전적 사고’가 정의당의 비전인지 묻고 싶다”며 “민심으로부터 멀어져 원내교섭단체에서 탈락한 정당의 대표로서 국민을 우습게 아는 퇴행적 발언이며 진보정당의 가능성마저 퇴출시키는 이분법적 막말”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