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토록 기다려온 여름 휴가철이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떠나기 전에 직장의 스트레스를 벗어나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휴식 문화도 바뀌어 한적한 사찰에서 명상을 즐기거나 호텔에서 그 동안 보고 싶었던 책을 본다든지 하는 소위 호캉스족이 늘어나지만 여전히 여행을 떠나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오는 것이 대세이다.
사실 이만하기도 얼마 되지 않았다. 한국 사회가 단기간에 압축 성장을 하면서 노동의 가치는 중요시하고 휴식은 버려지는 시간처럼 여겨지기 다반사였다. 직장에서 여름 휴가를 간다는 것이 나의 일을 남에게 맡겨 놓는 것 같아 포기하거나 단축하기 일쑤였다. 치열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남보다 덜 놀고 더 일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보편화된 세상을 우리는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러던 내가 휴가를 제대로 가본 것은 미국에서 잠시 일하던 시절이었다. 해외 근무 첫해 여름 휴가를 가기 위해 직장 상사에게 휴가원 결재를 받으러 들어갔다. 휴가를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쭈빗쭈빗 했더니 눈치를 채고 이야기한다. “미스터 문, 앞으로는 설명하지 마시고 그냥 내 책상 위에 올려 놓으시면 됩니다.” 비로소 깨달았다. ‘아하, 이래서 미국은 예약 문화가 일상화되어 있구나.’ 미국의 조직에서 휴가는 재충전을 위한 조직원의 권리이다. 물론 매년 성과 관리는 철저하다. 계약된 성과가 이뤄지지 않으면 승진은 고사하고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 더구나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기려면 전에 근무하던 곳의 상사 평가를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직장 생활에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 풍토였다. 대량 생산 체제하에서 후발 주자로서 경쟁국을 제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리를 지키고 일을 많이 하는 것이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3만 달러를 넘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경쟁력을 가지려면 혁신 선도자(first mover)가 되어야 한다. 남들이 가본 길을 빨리 따라 가기 위해서는 앞만 보고 열심히 일하면 되었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제대로 가려면 창의력이 필요하다.
독일의 저널리스트가 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은 피로 사회의 증후군이 곳곳에서 나타나는 우리 사회에서 곱씹어 볼 만한 내용이다. 인간이 수면을 통해 원기를 회복하며 복잡한 사안들에 대한 복기를 통해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성 원리를 발견한 아인슈타인이나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 수상도 잠을 즐겼다 한다. 사실 잠을 제대로 자지 않으면 일상적인 일은 처리할 수 있겠지만 멍한 상황에서 창의성이 생길 리 만무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져본 경험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쏟아지는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잠을 줄인다. 때때로 하루 24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그러나 실제로 복잡한 사안이 정리되는 것은 혼자만의 휴식을 가질 때였다. 그래서 주말 아침에 혼자 산책하는 습관이 생겼다. 운동을 위해서라면 빠르게 걷거나 뛰어야 하지만 가급적 천천히 걸었다. 걸으면서 그 동안 나를 짓눌렀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복잡하던 일들이 의외로 쉽게 정리되면서 해결 방법을 찾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함석헌 선생의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라는 시가 생각난다. 여기서 골방은 자기만의 시공간이다. 현대인이 네트워크 사회에 살다 보니 떨어져 있어도 휴가를 가 있어도 현장과 늘 연결되어 있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1990년대 외환위기, 2000년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뛰면서 생각하는 습관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정신없이 살아온 우리 세대가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골방이 필요하다. 골방에서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잠(沈潛)의 시간을 갖는다면 새로운 에너지가 생길 것이다. 이번 여름 휴가엔 짬을 내어 그대만의 골방을 가져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