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의 세계경제] 무역전쟁 전황 보고: 한국의 비자발적 참전

입력 2019-07-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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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19세기 청나라와 영국 사이에 발발했던 아편전쟁에서 보듯이 무역, 또는 상업적 이해관계 충돌이 총칼이 동원되는 전쟁으로 이어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괄목할 변화는 여러 나라가 국가 간 상거래를 관장하는 공통된 규범을 따르며 ‘무역’과 ‘전쟁’이 같이 쓰이는 일이 없어진 것이다. 지난달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는 이런 다자주의적 국제경제 질서의 대표적 현재화(顯在化)였다.

그런데 이번 오사카 회의는 이런 질서가 그리 견고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한국·일본 간 열리지 않은 회담을 포함해 가능한 많은 회담(190개) 중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이 ‘세기의 담판’과 같은 과장된 수사가 붙으며 관심거리였다. 보도에 따르면 두 정상은 5월 중단된 양국 간의 무역협정을 재개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위협하던 약 3000억 달러의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보류하기로 합의했다.

이 같은 결과는 작년 11월 말 아르헨티나 G20 회담 때와 비슷한 양상이다. 작년 가을에도 양국이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수단으로 대치하고 있었다. 당시에도 두 정상이 만난 후 미국은 관세 부과 확대를 연기하고, 중국은 미국 농산물 수입을 재개하며 갈등을 봉합했다. 하지만 휴전은 올해 5월 미국이 요구하는 국내 법 개정을 중국이 거부하면서 협상이 결렬되었다.

5월 이후 양국 간 관세 확대와 더불어 더 센 조치들이 동원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중국 거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화웨이를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집단으로 분류, 미국 기업들이 핵심 첨단 부품 판매를 차단하며 고사(枯死)를 초래할 수 있는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중국도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언급하며 전의(戰意)를 보였다.

그런데 대중국 강경파들이 확전(擴戰)을 반기는 것과 달리, 무역전쟁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만만치 않다. 중국과 거래가 많은 기업, 산출물 수출에 타격을 입은 농민, 그리고 관세 인상에 따른 생필품 가격인상을 우려하는 소비자들은 확전을 탐탁지 않게 보고 있다. 6월 28일 뉴욕타임스의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한 기사에 따르면 약 53% 대 43%로 일반인들은 미국과 중국의 관세 인상이 미국에 부정적이라고 보고 있다. 트럼프가 공언하듯 수입품에 부과되는 관세를 중국이 아니라 미국 소비자들이 부담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급한 것으로 치면 지지율이 낮은 상황에 내년에 대선을 치러야 하는 미국의 대통령이다. 그는 정책 결정에서 원칙을 강조하기보다 반대 급부를 우선시하는 단발적 거래(transaction) 관점에서 본다고 한다. 지난 대선 당시 “중국과의 무역 역조는 심각한 문제”라며 “이는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공언한 트럼프 입장에선 내세울 성과가 절실하며 협정의 구체적인 내용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체제가 다른 중국은 선거에서 이겨야 존립하는 미국 정부에 비해 더 전략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도 그동안 경기 부양에 앞장섰던 지방정부들의 부채 증가 등 내부의 화근(禍根)을 키워왔다. 무역전쟁이 길어져 경제 사정이 악화하면 시진핑 국가주석의 처지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무역전쟁의 온도를 낮추고자 한다.

미국은 청나라에 강요되었던 불평등조약을 연상시키는 중국 국내법 개정 요구를 언급하지 않고, 중국 기업들에 대한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며 유화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중국의 리커창 총리가 최근 중국에서 열린 하계 다보스회의에서 외국 기업들에 대한 차별 해소, 금융 산업 개방 등 정책 변화를 예고했다.

얼마 전까지 미국 정부는 화웨이가 심각한 안보 위협이어서 우방국에도 “화웨이와 미국 중 택일하라”는 식이어서 국내 기업들을 무척 곤혹스럽게 했기에 이런 태도 변화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간 미국이 무역장벽의 벽돌을 쌓을 때마다 언급하던 ‘안보’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과거 진중한 언행이 뒷받침하던 ‘팍스 아메리카나’의 약화도 심각한 부수적 피해가 될 것이다.

미·중 간 진흙탕 싸움이 없었더라면 일본이 대(對)한국 수출 통제를 단행할 수 있었을까. 이제 한국도 전장(戰場)에 떠밀려 나온 셈이다. 정부가 그간 반일(反日)의식 고취에 경도(傾倒)되어 통상 갈등 개연성을 등한시했던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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