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업계 주 52시간 근무제도의 일괄 적용이 생산성과 효율성을 낮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사전 보다는 사후 규제를, 봉급 기준으로 면제 적용하는 미국·일본 사례 등을 참고해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2일 ‘국내 금융투자업 근로시간제의 발전방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시장경쟁의 상황에서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 금융상품 개발업자 등의 업무가 시간적 집중이 필요하고 다른 인력으로 대체하기가 쉽지 않아 현행 국내 근로시간제는 해외 근로시간제에 비해 생산성 및 효율성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다는 위험 요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달 1일부터 300인 이상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에 주 52시간 근무제가 일괄 도입됐다. 직원 300명 이상인 곳은 증권사 22곳, 자산운용 3곳 등 총 25개사다. 이에 따라 정당한 예외사유 없이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는 사라지게 됐다.
업계 안팎에서는 52시간 근무제 일괄적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말 국내 경직된 근로시간 단축제도 때문에 노동생산성이 감소하고 경제성장률이 저하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근로자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원칙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금융투자업과 같이 업무의 질이 강조되는 성과 중심적 업무에 대해서는 경제 현실에 맞는 근로 시간제 면제제도를 두고 있다. 김 연구원은 “관련 문헌에 따르면 미국의 투자은행(IB) 업무 직원이나 애널리스트의 주당 업무 시간은 90~100시간이 넘는다”면서 “이에 반해 국내 금융투자업계 종사자는 3개월 이내 탄력 근로제를 적용받는 경우라도 특정한 주에 최대 64시간의 근로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직무(job duties)의 특성에 따라, 최저임금 또는 초과근무 규정의 적용을 면제받을 수 있는데, 월가 금융투자업 종사자의 경우 주급 기준 1125달러 이상을 받으면 면제 대상이 된다.
주당 최대 48시간 이상 근무하지 않는 유럽의 경우 업무 특성상 근로 시간을 양적으로 측정하기 어렵거나 근로자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근로 시간제에 관한 규제 완화가 가능하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지난해 제정된 관련 법을 통해 탈시간급제도를 도입, 성과 중심의 보수(연봉 1075만 엔 이상)를 받는 고액 전문직 근로가 스스로 근로시간을 결정할 수 있게 정했다.
김 연구위원은 ”금융투자업의 특성을 반영한 근로 시간제 규제 완화에 수반되는 부작용은 엄격하고 경직된 사전규제를 통해 해결하기보다는 ADR(재판외분쟁해결절차) 등을 활용한 신속하고 효과적인 사후구제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저소득 금융투자업자에 대한 근로 시간제 면제제도의 남용을 막기 위해, 미국이나 일본과 같이 봉급 기준을 제도화하는 방안도 장기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등의 업무특성을 반영하여 재량 근로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관련 고시를 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김 연구원은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등에 재량 근로를 허용하는 방향은 근로 시간제의 효율성 확보 차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된다”면서 “핀테크 등 혁신금융의 개발부문, 해외주식부문 등의 종사자에 대한 재량근무제의 확대도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탄력 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의 입법화도 추진력 있게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