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의 말이다. 이 임원에 따르면 매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직원들은 오후 5시 30분이면 모두 회사를 나선다. 초기에는 집으로 직행하거나 종종 술청 앞에서 주 52시간 근무제를 극찬하며 동료들과 맥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런데 누군가 취미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다른 누구는 대학원을 다니거나 어학과 회계 등 전문학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작지만 의미있는 빈부의 격차가 나기 시작했다. 대학원에 다니려면 연간 1000만 원 이상이 필요하다. 학원을 다녀도 매월 수 십만원이 든다. 집 대출 갚기에도 빠듯한 직원들에게 이런 선택은 쉽지 않다.
이뿐 아니다. 회사에서 끝내지 못한 프로젝트 기획안을 집에서, 또는 PC방에서 만들고 있는 동료도 등장했다. 업무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며 인상 찌푸리고 같은 시간 퇴근했던 동료가 다음날 말끔한 보고서를 가져와 상사에 보고하는 모습에 일종의 ‘배신감’이 든다는 뒷말도 나온단다. 중·고등학교 때 어제 자느라 공부를 못했는데 다음날 본 시험에서 100점 맞은 친구를 보며 가졌던 감정일 게다.
우리나라 대기업 직원 대부분은 고위직 승진에 목숨을 걸고 있어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 같다.
몇 년 전 미국 IBM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지인이 서울을 찾았다. 여름 휴가차 가족들과 함께였다. 여름휴가 기간은 무려 3주. 본인의 연장 근무에 따른 대휴와 연차 등을 붙여서 휴가를 썼다고 했다. 그러고도 아직 연차가 남아 겨울에도 2주 정도 가족여행을 계획 중이란다.
부러운 마음에 “휴가를 몇 주씩 써도 위(직장상사)에서 눈치를 주지 않느냐”고 물었다. 내심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넌 대답만 해)’였다. “미국 기업문화는 한국처럼 구시대적이 아니야!”
내가 틀렸다. 그는 자신이 승진을 포기했기 때문에 장기 휴가를 쓰는데 자유롭다고 했다.
“미국 대기업에서도 톱 자리에 가려고 마음먹은 직원들은 밤낮없이 일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휴가 기간을 짧게 쓰지. 회사에서 직원을 보는 잣대는 한국과 별 차이 없을 거야. 그런 직원들이 인정을 받더라고. 단지 큰 차이점 하나는 난 해고되더라도 다른 일자리 찾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거지. 한국 친구들은 회사 관두면 치킨집 등 자영업에 뛰어들던데.”
미국만 그런 것 같지도 한다. TV의 한 예능프로그램에서는 복지 천국 덴마크에 한국식 포장마차를 차려 삶의 여유를 조망했다. 하지만 포장마차를 찾은 한 교포는 “주변에 승진하려는 직장 동료들은 정말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하기도 했다.
우리가 선망의 대상으로 삼는 선진국 노동자들의 모습은 대충 이렇다.
아침에 느긋하게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정시에 출근해 정시에 퇴근한다. 정원에서 아이들과 뛰어놀아주면 부엌에서는 부인이 음식을 만들며 따뜻한 미소로 이 모습을 쳐다본다. 그리고 온 가족이 모여 저녁을 같이 먹은 후, 침대에서 책을 읽어주며 아이들을 재운다. 마지막으로 침대맡 스탠드 전등을 꺼주며 달콤한 굿나잇 키스를 나눈다.
문재인 정부는 바로 이런 삶을 국민에게 선사하고 싶었을 거다.
문 대통령이 영화 ‘판도라’를 보고 탈원전을 결심했다는데, 주 52시간 근무제도 미국이나 유럽의 가족영화를 많이 봤기 때문일까? 어쨋든 노동유연성이 지극히 떨어지는 우리나라 상황은 염두에 없었던 듯 싶다.
대기업 직원들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미용 관련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A씨는 석 달 전부터 카카오톡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7시부터 시작해 새벽 1시까지 일하면 하루 8만 원 정도 수입을 챙길 수 있다고 한다. 주 4일 정도 대리운전을 하는데, 월평균 100만 정도를 벌어 아이들 교육비로 쓴다고 했다. 야간근무수당이 없어져 대리운전으로 이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부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4400여 만 명이라고 한다. 노동인구 3명 중 1명꼴이다. 제도 보완 없이 이렇게 주 52시간 근무제가 강행된다면 ‘누리는 자·못 누리는 자·피해자’로 분류되는 ‘신(新) 계급사회’가 등장할 수도 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세상의 눈물의 양은 정해져 있지. 누군가 울기 시작하면 다른 누군가는 울음을 멈추겠지. 웃음도 마찬가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