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본 영화 ‘도어락’이 떠올랐다. 홀로 사는 주인공이 스토커에 시달리며 겪는 공포를 그린 영화다. 주인공은 현관 도어록 덮개가 열리고 누군가 현관문을 강제로 열려고 해 경찰에 신고하지만 출동한 경찰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사건이 발생하면 신고하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최근 한 30대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의 집에 침입하려는 장면이 CCTV에 잡혔다. 간발의 차이로 실패한 남성이 여성의 집 문을 두드리고, 휴대전화 손전등으로 도어록을 비추는 모습도 포착됐다.
큰어머니와 살던 여고생을 스토킹하다 살해한 진주 안인득 방화사건, 두 딸과 살던 전 부인을 스토킹한 끝에 살해한 등촌동 주차장 살인사건의 공통점은 범행에 앞서 스토킹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국내법상 스토킹 범죄는 경범죄 처벌법에 규정된 ‘지속적인 괴롭힘’에 해당한다. 기준이 모호해 피해 신고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스토킹 행위에 대한 제재 규정은 2013년 3월부터 시행 중인 ‘경범죄처벌법’이 유일하고 처벌은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일정재산을 납부하게 하는 형을 부과할 수 있다. 노상방뇨, 무임승차와 같은 처벌 수위다.
이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이용해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내용을 반복적으로 상대방에게 보내는 사이버스토킹은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지만, 미행이나 원치 않는 만남 강요 등 대표적인 스토킹 행위들은 모두 경범죄로 처리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토킹을 성폭력의 전조로 보고 강력히 처벌해야 추가 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국회에서 스토킹처벌법은 1999년 처음 발의돼 20년간 12개 법안이 제출됐지만, 이들 법안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되거나 계류 중인 상태가 반복되고 있다.
관련 법안 마련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사이 스토킹 범죄 건수는 늘고 있다.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스토킹 사건 수는 2014년에 297건, 2018년에 544건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에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발생하는 스토킹 범죄 건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에선 스토커 행위 등의 규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처벌을 강화하는 추세다. 미국은 1990년 캘리포니아주에서 스토킹 금지 법안을 제정한 이후 현재 50개 모든 주에서 법이 제정됐다. 최소 6개월에서 최대 5년까지 징역형을 내릴 수 있다. 일본도 2000년 스토커 규제법을 만들어 징역 1년 이하, 벌금 100만 엔(1000만 원)까지 부과한다. 물리적 폭력 없이도 ‘따라다니기’나 SNS에 집요하게 글을 올리는 행위도 스토킹의 범주로 보고 처벌하고 있다.
스토킹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피해자는 일상생활 자체가 힘들 정도다.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인식 제고와 그에 따른 신속한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 pe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