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가 이 정도였으니 보통 수준의 경우 30개, 신참이라면 10개 남짓 완성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에이스와 신참 간에 실력 차이가 분명 있다는 점이다. 잘 깎인 펜촉은 매끄럽고 부드럽게 써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얼핏 펜 끝은 하나의 구(球)로 보이지만 사실상 두 개의 반구(半球)가 붙은 것으로 그 반구의 크기는 양쪽이 똑같아야 명품(名品)이다. 반대로 마무리가 서툰 것은 쓸 때마다 종이를 벅벅 긁고 획(劃) 또한 건너뛰는 등 제대로 써지지 않는다. 때문에 만년필을 제법 수집하는 사람들은 보석 세공사가 가지고 다닐 법한 열 배(10X)의 확대경을 늘 갖고 다니며 펜촉을 확인한다.
펜촉 이야기가 나온 마당에 사람들 모두가 명품으로 생각하는 몽블랑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보자. 몽블랑 대표 모델인 ‘마이스터스튁 149’는 1952년부터 지금까지 생산되고 있는데, 1950년대 펜촉을 최고로 하고 그다음이 60년대, 70년대, 80년대 등 오래된 것일수록 좋게 친다. 실제로 확대경으로 봐도 오래된 것일수록 이것이 사람의 솜씨인가 싶게 5대 5로 명확하게 갈라져 있고, 써보면 적당한 탄력으로 마냥 매끄러운 것을 넘어 나긋나긋 부드럽게 써진다. 이는 몽블랑뿐만 아니라 모든 만년필 회사에 해당되는데, 지금 펜촉을 깎는 사람들에게 서운하게 들릴지 몰라도 예전 장인들 솜씨가 더 좋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집의 길이 어려운 것이 이런 149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1985년이라도 약 35년 전이라 남아 있는 것이 적고 그나마 있는 것들도 선배 수집가들의 손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전의 신품(新品) 149를 구합니다.”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면 구해질까? 중국고사에 아주 적절한 답이 있다.
전국시대 연(燕)나라 소왕(昭王)이 인재를 구하려 애썼는데 충신 곽외가 하루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옛날 어느 임금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후한 값을 주고 죽은 명마를 샀더니 얼마 되지 않아 산 천리마 몇 마리를 얻게 되었답니다.” 소왕은 이 이야기를 듣고 돈은 물론 몸까지 낮추어 인재를 얻었다는 것. ‘천금시골(千金市骨)’의 고사이다. 상태가 좀 떨어져도 깎지 않고 사고 일단 샀으면 가타부타 말이 없어야 한다. 천리마도 나오는 마당에 1970, 80년대 149보다 더한 것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아무리 손님은 왕이라지만… 왕도 매너가 있어야 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