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윤공주 씨는 개막을 한 달 앞두고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서 타이틀롤 '안나' 역으로 긴급 투입됐다. 당초 김소현 씨와 함께 안나 역에 더블캐스팅 된 차지연 씨가 건강상의 문제로 하차하면서 합류하게 됐다. 당시 그는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 역으로 한참 공연을 하고 있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인근의 카페에서 만난 윤 씨는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 하루 잘 버티자' 하며 하루하루 연습에 몰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주어진 연습 기간은 한 달이었다. 그마저도 다른 공연과 맞물려 하나에 매달리기 힘든 상황이었다.
"연습할 때부터 '그분이 오신 거 같은데?'라고 생각할 정도로 몰입했던 거 같아요. 그동안 제가 하지 않았던 연기 스타일이었지만, 안나가 죽음으로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복잡한 감정 표현이 좋더라고요. 매회 달라지는 거 같아요. 무대를 하면 할수록 안나가 되어가고 있어요."
알리나 연출도 윤 씨의 '힘'에 놀랐다. 윤 씨는 "야리야리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힘이 있어서 놀란 거 같다"고 했다. 윤 씨는 무대 위에서 화려한 의상을 입고 등장하지만, 극의 흐름상 수차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이 과정도 힘들지만 즐겁다고. "제가 잘 뛰기로 유명해요. 어제 제 드레스 꼬리를 살짝 밟아서 휘청거리기도 했지만요."
윤 씨는 뒤늦은 합류에도 금세 적응했다. 알리나 연출의 지도로 빠르게 몰입할 수 있었다. "연출님이 섬세한 감정들을 끌어내주셨죠. 약속된 행동이 아닌, 진짜로 느끼는 감정을 끄집어 내주신 거예요. '눈보라' 장면에서는 안나가 복잡한 감정을 표현해야 해요. 그 장면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감정을 쏟아내는 연습을 가장 많이 했죠."
윤 씨는 '안나 카레니나'로 러시아 뮤지컬을 처음 경험한다. '안나 카레니나' 무대는 상당히 화려하다. 19세기 고전미가 고스란히 담겨 웅장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뮤지컬 중간중간 크루가 직접 무대 위에서 세트를 옮기는데, 이 모습이 관객에게 그대로 노출된다. 윤 씨는 "저는 오히려 그게 좋았다"라며 "우리가 이렇게 무대를 만들어간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윤 씨는 브론스키 역의 김우형, 민우혁 그리고 더블캐스팅의 김소현과 달리 유일한 미혼이다. 아들을 향한 안나의 모성을 표현해야 하는데, 엄마로 사는 삶을 경험하지 않아 고충도 있었을 터.
"엄마로서의 안나의 모습이 가장 중요하게 보이길 원했어요. 하지만 진짜로 경험을 해야만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아역 배우가 제 품에 안겨서 자는데 너무 울컥해서 노래를 못할 뻔 했어요. 상상으로도 다 느껴지던 걸요."
윤 씨는 "모든 장면이 다 좋다"고 말한다. 패티가 '오 나의 사랑하는 이여'를 부르는 장면은 진짜 안나가 된 것 같아서 좋다. 그는 요즘 '안나 카레니나'로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예전에는 아무리 작은 역할이어도 부담은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안나 카레니나'를 하면서 확실히 책임감을 느꼈어요. 공연은 절대 저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더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관객이 '안나 카레니나'를 꼭 봐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 "조금은 색다를 수 있어요. 화려한 무대도 있고, 뮤지컬인데 오페라, 발레, 스케이트 다 있는 종합 예술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안나라는 여자의 여정을 통해 내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