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리암 폭스 영국 국제통상부 장관은 10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한·영 FTA의 원칙적 타결을 선언했다. 2016년 6월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ㆍBrexit)를 선언한 지 3년 만이다.
한·영 양국은 그해 연말부터 양자 FTA 협상을 논의해왔다. 영국이 EU와의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딜(No-deal) 브렉시트'를 강행하면 기존에 EU가 영국을 대신해 한국과 맺었던 FTA도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영(對英) 수출액은 63억6000만 달러로, 영국은 EU 역내에서 독일 다음으로 한국 제품을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양국은 양국 통상 관계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이번 협상의 초점을 뒀다. 이를 위해 모든 공산품 관세를 철폐한 한-EU FTA의 양허안을 유지하기로 했다. 덕분에 자동차와 선박, 해양 플랜트 등 한국의 주요 수출품을 이전처럼 무관세로 영국에 수출할 수 있게 됐다. 코트라 분석에 따르면, 양허안이 유지되지 않았다면 대영 수출품 중 74%, 약 2200개 품목에서 관세 부담이 늘어날 상황이었다.
한국과 영국은 원산지 규정도 3년간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데도 합의했다. 유예 기간에는 다른 EU 국가에서 부품을 조달한 제품도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물류 분야에서도 EU 역내를 거친 경우에도 한·영 FTA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했다.
영국은 이번 협상에선 '지리적 표시제'를 얻어냈다. 두 나라는 영국령 북아일랜드산 위스키도 아일랜드산 위스키와 마찬가지로 '아이리시 위스키'로 표기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우리 측 요구는 향후 개선 협상에서 본격화할 예정이다. 한·영 양국은 연속성과 안정성 확보에 주력한 이번 협정에서 개방 수준을 더 높일 수 있도록 발효 후 2년 안에 협정을 개선하기로 했다.
한국은 특히 투자 규범을 강화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한국의 대영 투자가 2011년 한-EU FTA 발효 후 65% 늘었지만(2011년 11억9000만 달러→2018년 19억5800만 달러) 투자자 보호 조항이 빈약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개선 협상을 통해 한-영 FTA의 투자 조항을 다른 FTA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협상단은 국내 수출 기업의 요구가 큰 무역 구제나 수출입 수수료 투명성 조항도 개선 협상에서 논의키로 했다.
한-영 FTA가 제 역할을 하려면 늦어도 브렉시트 시한인 10월 31일 전에 양국 국회 비준을 받아야 한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그(브렉시트) 전까지 무조건 타결시켜야 한다"며 "국회 비준은 2, 3개월 걸린다. 지금 시작해도 빠듯하다"고 말했다. 여야 대치를 공전하는 국회 상황이 한-영 FTA 비준에 복병이 될 수 있다.
유 본부장은 “금번 한-영 FTA 원칙적 타결은 미·중 무역분쟁 심화, 중국 경기 둔화 등 수출여건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브렉시트로 인한 불확실성을 조기에 차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우리 업계가 영국 내 변화에도 동요 없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비즈니스를 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폭스 장관도 “금번 영-한 FTA 원칙적 타결을 통해 양국 간 교역의 지속성을 마련한 것은 영국과 한국 기업들이 추가적인 장벽 없이 교류가 가능하도록 한 것으로 이는 향후 양국 간 교역이 더욱 증가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