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4차 산업혁명] 제4차 산업혁명을 향한 중국의 21세기 대장정

입력 2019-06-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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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대 교수, 전 경기과학기술진흥원장

무역마찰로 겉옷을 입은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주 의미 있는 한 외신 뉴스가 보도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5월 27일 커지고 있는 중국(greater china)에 관한 폭넓고 깊이 있는 뉴스를 보도하기 위해 선전(深圳)에 지국을 개설한다.”

선전 지국은 FT가 중국에서 베이징, 상하이에 이어 세 번째로 개설한 뉴스 허브로 FT는 선전에 지국을 개설한 유일한 외국 뉴스 매체가 되는 셈이다.

FT는 홍콩의 아시아총국, 타이페이지국과 연계해 다른 매체에 비해 압도적 경쟁력을 갖고 중국으로부터 비즈니스와 금융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경제뉴스를 발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전문기자를 스카웃해 기술, 제조업, 교통, 노동 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취재 능력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FT는 영국의 유력한 글로벌 경제지이면서 일본의 대표적 경제지인 일본경제신문그룹 산하에 있다.

이러한 FT의 움직임은 1년 전 미국의 구글이 베이징과 상하이에 이어 선전에 사무실을 내며 ‘중국판 하드웨어 실리콘밸리’에의 본격 상륙을 선언한 것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구글은 하드웨어, 세일즈, 로지스틱스, 소싱 등의 협력 허브로 선전 사무실을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세계 유수의 미디어 기업과 인터넷 포털 기업이 제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실험장이자 시장인 중국에서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FT의 선전 진출을 앞둔 지난달 20일 중국의 제4차 산업혁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시진핑 주석은 대담한 전략적 행보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대미 무역협상 사령탑인 류허 부총리를 대동하고 중국 혁명의 성지 장시성에 나타난 것이다. 장시성은 희토류 가공공장과 대장정(大長征) 출발 기념탑이 있는 곳이다.

시진핑 주석은 스마트폰과 전기자동차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되는 전략자원인 희토류 가공공장을 시찰하면서 “스스로 핵심기술을 가지면 격심한 경쟁에도 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경제발전의 열쇠가 되는 차세대 기술 획득을 지시하고 미국과의 하이테크 패권을 둘러싼 항미(抗美) 결전의 의지를 밝힌 것이다. 시 주석은 중국의 통신기기 메이커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금수조치를 염두에 두고 대외 의존 탈피를 위한 첨단기술의 자주개발 가속과 제조업의 발전을 촉구하면서 마오쩌뚱 시대의 ‘자력갱생’ 분위기를 연출했다.

시 주석은 희토류 공장 방문 뒤 곧바로 대장정 출발 기념공원을 찾아 21세기의 새로운 대장정을 역설했다. “우리는 대장정의 출발점에 왔다. 지금 다시 새로운 긴 여정이 시작됐다.” 대장정은 국민당에 패한 중국 공산당이 거점이었던 장시성 뤼진(瑞金)을 포기하고, 1934년부터 2년에 걸쳐 1만2500km를 도보로 이동한 사건이다.

역사는 때로는 흥미로운 아이러니를 제공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에드거 스노는 1936년 중국 공산당을 밀착 취재했다. 에드거 스노는 1937년 자신의 기록을 바탕으로 쓴 저서 ‘중국의 붉은 별’에서 당시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 과정을 낱낱이 서방에 알렸다. 선전에 지국을 개설한 FT는 중국의 21세기 대장정을 큰 눈으로 지켜보면서 서방에 전달하는 새로운 애드거 스노를 자처하고 있는 셈이다.

시진핑 주석은 제4차 산업혁명 와중에 중국 공산당이 주도하는 새로운 대장정을 선언했다. 대장정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극복하고, 훗날 결국 승리해 중국 공산당 정권을 수립하는 혁명 레거시(유산)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1949년 공산당 정권 수립 100년이 되는 2049년에 미국을 넘어선 세계 최강국이 되기 위한 ‘중국몽’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몽을 향하는 길에 기회와 위기의 얼굴로 나타난 게 바로 제4차 산업혁명이다. 시 주석의 21세기 대장정 선언은 제4차 산업혁명을 향한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한 중국의 비장한 의지 표명이다.

미·중 간의 기술패권 전쟁과 중국의 대장정 선언은 한국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우리야말로 대장정을 넘어서는 굳건한 전략 수립과 실행 의지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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