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 사용료를 통신사가 콘텐츠 제공업체(CP)에 받는 것 자체가 큰 문제다. 이미 통신사 고객들은 한 달에 몇 만 원씩 망 비용을 내고 있다. 고객들이 그 돈을 내는 데에는 왓챠 같은 콘텐츠를 즐기기 위한 목적도 포함됐다. 통신사에 소비자와 CP, 양쪽 모두가 수익원이 되는 셈이다.”
박태훈(34) 왓챠 대표는 망 중립성을 논하기 전에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왓챠 사무실에서 만난 박 대표는 일본 출장을 막 다녀온 직후라 얼굴에 피로가 짙게 묻어 있었다. 그런데도 뭉뚱그려 말하는 법 없이, 오랫동안 고민한 문제를 차분히 털어놓았다.
왓챠는 2012년 동영상 콘텐츠의 리뷰와 평점 등을 제공하는 콘텐츠 추천 서비스로 시작해 2016년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OTT) ‘왓챠플레이’를 론칭했다. 직원 60여 명을 둔 스타트업이지만, OTT 사업에서는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당당하게 맞붙고 있다. 누적 투자액은 230억 원이며, 왓챠 가입자는 500만 명에 달한다. 왓챠플레이가 보유한 영화, 드라마 등 콘텐츠 수는 5만여 편이다.
유망한 스타트업으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박 대표는 나름의 고민을 안고 있다. 넷플릭스나 SK브로드밴드의 OTT 플랫폼 ‘옥수수’ 등과의 공정 경쟁을 가로막는 망 사용료가 그 요인이다. 왓챠를 포함해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CP들은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통신사업자들에게 망 사용료를 낸다. 그 규모는 한 해 수백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서버가 미국에 있는 구글의 유튜브, 넷플릭스 등은 망 사용료를 내지 않는다. 이 문제로 올해 4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통 3사가 국내 CP와 글로벌 CP 간 망 사용료를 차별해 받고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박 대표는 “유튜브와 넷플릭스 모두 트래픽이 엄청난데도 서버가 해외에 있다는 이유로 망 사용료를 내지 않는다”며 “누가 봐도 불공정한 경쟁”이라고 비판했다.
박 씨는 이 문제를 뿌리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통신사들이 CP들한테 망 사용료를 애초에 받지 않는 것이 적절하냐는 데 의문을 표했다. 그는 “오래된 문제인데 제대로 공론화된 적이 없다”며 “통신 사업이 국가 승인으로 이루어지고, 보호받는 산업이라 그런지, 아니면 국회나 방송통신위원회 등에 영향력이 강해서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수많은 IT 회사들에 돈을 걷어 통신사의 배만 불리는 형국”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지상파 3사의 OTT인 푹(POOQ)과 SK텔레콤의 옥수수는 통합 법인 출범을 준비 중이다. 올해 7월 정식 출범 뒤 9월께 본격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이 목표다. 박 대표는 “옥수수를 포함해 향후 통합 법인이 통신사에 망 사용료를 잘 내는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일”이라며 “그것이 공정 경쟁을 위한 첫걸음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망 중립성은 인터넷을 공공재로 여기고, 네트워크 사업자가 모든 콘텐츠를 동등하고 차별 없이 다뤄야 한다는 원칙이다. 미국은 2018년 6월 망 중립성을 폐지했다. 미국 통신사업자들은 망을 차별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 셈이다. 국내에서 망 중립성 폐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미국도 이미 폐지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박 대표는 “망 중립성이 폐지된 상태에서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나올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하며 “덩치 큰 통신사들이 미국 정부 쪽에 로비한 결과 망 중립성이 폐지된 것일 수 있는데, 그것이 올바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벤처 환경에 관해 박 대표는 “벤처 투자 지원 정책은 나아졌다고 느낀다”면서도 “글로벌 기업, 통신사들과 경쟁하는 스타트업의 경우 가장 불리한 조건에 처해 있는 것은 맞다”고 진단했다. 박 대표는 “망 중립성 문제에 관해서는 글로벌 기업, 통신사와 비교해 저희만 피를 철철 흘리며 싸우고 있는 격”이라며 “벤처 업계에서는 ‘한국에서 벤처 하려면 미국에 법인, 서버를 두고 서비스하는 게 유리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정부를 향해 “공정 경쟁을 위한 환경 조성에만 집중해줘도 좋겠다”고 덧붙였다.
OTT 시장의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왓챠플레이는 왓챠의 별점 평가 데이터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다져나갈 방침이다. 2016년 왓챠플레이를 론칭할 때만 해도 박 대표는 “‘이렇게 작은 회사가 어떻게 동영상 서비스로 넷플릭스랑 경쟁하냐’는 말을 수시로 들었다”고 전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왓챠플레이는 디즈니, 파라마운트픽처스, 이십세기폭스, 소니픽처스 등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 배급사 여섯 군데와 수급 계약을 맺었고, 한국 내 대부분의 콘텐츠 유통사와도 계약돼 있다. 영화, 드라마 등 작품 수 기준으로는 넷플릭스를 넘어섰다.
올해 하반기에는 왓챠플레이의 일본 론칭을 앞두고 있다. 인터뷰한 날도 일본 출장을 다녀온 박 대표는 “일본의 OTT 시장은 한국보다 더 치열한 상황이긴 하다”며 “향후 5~7년 안에는 일본을 포함한 여타 아시아 시장에도 진출해 한국 콘텐츠를 많이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