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나 로마제국이 번영에 취해 스스로 무너졌듯, 일본 또한 중우(衆愚)정치로 자살하고 있음을 경고했다. 사실 오래전인 1975년 시사월간지 ‘분슌’(文藝春秋)에 게재된 ‘일본의 자살’을 인용한 글이다. 일본이 고도성장의 풍요를 구가하던 당시, ‘그룹1984’라는 익명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작성한 논문이다. 모든 문명은 외부 공격이 아니라 내부 사회구조의 붕괴로 소멸했다며, 로마 멸망에서 일본의 몰락을 예감한 내용이었다.
‘빵과 서커스론’이다. 로마가 잇따른 정복으로 부를 쌓고 시민들은 공짜로 빵을 얻자 노동을 망각하고 오락에 빠졌다. 콜로세움의 검투사 경기가 상징하듯, 정치는 시민의 환심을 얻으려 빵과 서커스 더주기 경쟁을 벌였고 시민들은 끝없는 번영을 믿었다. 하지만 그 착각의 순간 복지비용 증대, 포퓰리즘 범람, 사회활력 상실로 무너지기 시작했고, 일본도 그 자살 메커니즘에 갇혔다고 주장했다.
37년을 지나 분슌은 다시 ‘신(新)일본의 자살-그리스처럼 되는 날’이란 가상 시나리오를 실었다. 그리스가 별 생산력도 없이 흥청망청 복지로 재정을 거덜내고 국가부도에 몰렸던 때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집단 무기력증에 빠진 정치·경제·사회 상황이 노다(野田佳彦)정권을 와해시키고, 젊은 오사카 시장 하시모토(橋下徹)가 이끄는 내각이 새로 출범한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의 200%를 넘는 재정적자 개선능력의 상실과 채무상환 위기로 신용등급이 추락하면서 국채 가격은 바닥으로 치닫는다. 정부는 연금 삭감과 공무원 절반 감축 등의 비상조치를 내놓지만 분노한 시민들의 소요가 잇따르고, 경제와 민생은 악성 인플레로 궁핍의 늪에 빠지게 된다는 얘기였다.
물론 ‘소설’은 빗나갔다. 이후 아베(安倍晋三)정권이 들어섰다. 아베는 대규모 양적 완화, 확장 재정, 과감한 구조개혁을 통한 성장전략이라는 ‘세 개의 화살’로 불황 탈출의 드라이브를 걸었다. 일본이 어떻게 ‘잃어버린 20년’의 장기 침체를 벗어나고, 다시 경제부흥의 궤도에 올라섰으며, 지금 사실상 완전고용을 일궈내고 있는지는 우리가 보고 있는 바다.
일본 자살론을 다시 떠올린 이유는 우리 상황 때문이다. 일본의 늪이었던 불임(不妊)정치, 무책임한 국정, 포퓰리즘 만연, 경제 리더십 실종 등은 지금 한국의 고질이다. 오히려 더 심하다. 정치는 현안 해결과 갈등 조정에 무능하고, 국회는 싸움밖에 모른다.
정부는 잘못된 소득주도성장론으로 밀어붙인 최저임금 과속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의 문제를 모두 재정으로 땜질하는 ‘세금 만능’에 빠졌다. ‘문재인 케어’니, 청년수당이니, 마약과도 같은 퍼주기 복지는 헤아리기도 어렵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이 또 얼마나 기승을 부릴지 모른다.
골병드는 건 경제다. 비상벨이 울린 지 오래다. 생산과 소비가 뒷걸음질이고, 투자는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나쁘다. 경제를 지탱했던 수출마저 작년 말부터 계속 줄고 있다. 고용참사는 개선될 기미도 없다. 4월 실업자 수·실업률은 역대 최악이다. 올 1분기 -0.3%의 마이너스 성장에 외국 투자자들도 한국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치명적 리스크인 미중 무역전쟁의 먹구름까지 덮치고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은 탄탄하고, 총체적으로 성공으로 가고 있다”며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고 주장한다. 답답하다. 망가지는 경제, 역주행 정책에 대한 경고와 비판이 잇따르지만, 눈감고 귀 닫은 것도 모자라 현실을 부정하고 왜곡한다. 과거 일본의 자살론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개혁의 모멘텀을 만들려는 자기반성의 몸부림이었다. 위기를 제때 자각하면 그래도 반전의 희망이 있다. 그 기대가 멀어진다. kunny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