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도미노처럼 기준금리를 일제히 내리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은행(Fed·연준)도 금리 인하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연은)의 라파엘 보스틱 총재는 10일(현지시간) 관세 추가 인상으로 소비가 타격을 받으면 연준이 금리 인하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고 미국 금융전문매체 마켓워치가 보도했다.
보스틱 총재는 이날 미시시피주 메리디언에서 기업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에서 “아직 미국 소비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한 관세 인상 고통을 크게 느끼지 않고 있다”며 “이는 대부분 기업이 관세에 따른 부담을 최종 소비자에게 아직 전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정부가 새롭게 관세 인상에 나서면 소비자들이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라며 “이에 연준은 금리 인하를 검토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기업들은 최근 연준 직원들에게 관세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토로한다”며 “연준은 기업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물가 상승이 확인되면 가계가 소비지출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보스틱 총재는 “연준은 민첩해야 하며 준비가 돼 있고 항상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며 “경제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를 재빠르게 이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관세 추가 인상은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박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연준의 정책 결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낮은 인플레이션은 그동안 연준이 금리 인상을 억제한 가장 큰 이유였지만 트럼프 정부가 관세 인상으로 이를 날려버리려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물가가 올라도 경기가 후퇴하면 연준이 금리를 내릴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럼에도 가파른 물가상승률은 연준이 통화정책을 완화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미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앙은행들은 미·중 무역전쟁을 둘러싼 경제적 불확실성에 직면해 금리를 낮추기 시작했다.
필리핀 중앙은행은 10일부터 기준금리를 종전보다 0.25%포인트 인하한 4.50%로 적용했다. 필리핀 중앙은행은 6년 반 만에 처음으로 금리를 낮춘 것이다. 그동안 필리핀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고자 금리인상 행보를 이어갔다. 지난해 필리핀 기준금리는 무려 1.75%포인트 올랐다. 경기둔화 우려가 불거지면서 결국 정책 기조를 전환하게 된 셈이다.
9일 발표된 필리핀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5.6%로, 전분기의 6.3%에서 낮아지고 시장 전망인 6.1%를 밑돌았다.
앞서 말레이시아는 지난 7일 기준금리를 3.00%로, 종전보다 0.25%포인트 인하했다. 이는 3년 만에 첫 금리 인하다. 뉴질랜드도 8일 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인 1.5%로 낮추면서 금리 인하 대열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