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사이트 10여 개, 수천 개의 성인물'
올 들어 정부는 대대적인 불법 유해 사이트의 접속 차단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대로 불법 유해 사이트들은 사라졌을까. 기자가 한 시간 동안 인터넷을 검색한 결과, 여전히 많은 불법 유해 사이트에 손쉽게 접속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사이트는 접속이 차단되더라도 트위터로 변경된 주소를 공유하며 이용자를 계속 끌어모으고 있었다. 또한, 차단한 기존 사이트의 주소 일부를 변경하면 여전히 접속할 수 있는 곳도 많아 정부의 차단 정책을 무색게 했다.
정부는 올해 2월부터 보안접속(https)이나 우회접속 방식으로 유통되는 해외 서버 기반 음란·도박·저작권 위반 사이트 차단을 실시했다. 기존 불법 유해 사이트 차단 방식만으로는 HTTPS를 이용한 사이트들을 차단할 수 없자, SNI(Server Name Indicationㆍ서버가 암호화되기 직전에 정보 교환이 이뤄지는 SNI 필드에서 불법 사이트를 차단하는 기술) 필드 차단 방식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의 국민 접속 기록 관리는 사생활 침해이자 '인터넷 검열의 길로 가는 발단'이라는 반발에도 SNI 필드 차단을 도입했지만, 현재도 성인 사이트와 같은 유해 사이트들은 정부의 규제를 피해 성인물을 올리고 있었다. 이용자도 커뮤니티 등에서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등, 규제를 빗겨 나가고 있었다.
무분별한 음란물 게시로 한 때 사회적인 문제가 됐던 미국의 소셜서비스 '텀블러'의 상황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텀블러는 작년 12월 "음란물을 차단하겠다"라고 선언했다. 이로 인해 6억 명에 육박하던 이용자 수는 올해 1월에 4억3000만 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보복성 음란물과 몰래카메라는 회사의 제재를 피해 버젓이 온라인상에 남아 있었다. 구글과 같은 검색 포털에서 'tumblr'와 몇 개의 단어를 조합하면 ‘tumb○○’라는 사이트로 넘어가 어렵지 않게 불법 음란물을 찾을 수 있었다. tumb○○는 텀블러에서 삭제된 이미지, 동영상, 글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텀블러와 같이 해외 사이트에 있는 불법 성인물에 관해 심의ㆍ시정요구 하는 등 규정에 따라 조처를 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4월 10일 기준으로 음란 1610개, 도박 7451개, 저작권 308개 사이트도 차단했다. '야동(야한 동영상)을 볼 곳이 없다'라는 일부 네티즌들의 아우성이 빈말은 아닌 셈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한 관계자는 “우회 접속이 지금도 가능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정보통신망사업자와 함께 대처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해외 사이트에 올라오는 불법 음란물을 삭제하는 동시에 트위터 등 해외 사이트에 협조를 구해 지속적으로 불법 음란물을 근절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ㆍ외를 가리지 않고 규정에 어긋나는 것은 철저히 따져 없애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문제는 사라진 불법 유해 사이트는 사라진 수 만큼 새로 생겨난다는 점이다. 정부의 대응이 성인물 유통보다 한 발 느릴 수밖에 없는 만큼 '완전근절'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성인물을 부분적, 단계적으로 허용해 제도권에서 이를 감시, 감독하는 게 낫다는 일각의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몰래카메라와 보복성 음란물은 강력하게 처벌하더라도 성인들이 소비할 수 있는 창구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체코, 스위스 등 OECD 37개 국가 중 성인물을 금지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대다수가 전면 허용했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는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물론, 이들 국가는 성인물은 허용하면서도 보복성 음란물과 같은 불법 콘텐츠에는 강력 대응하고 있다.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은 성인물의 허용과 비허용의 경계가 매우 모호해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성인물이 유통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무조건 금지하기보다는 제도를 현실에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설 교수는 “성인물을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 것인지, 또 어떻게 유통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이윤수 한국성과학연구소 소장도 "성인물을 제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의견을 함께했다. 이 소장은 "몰래카메라나 보복성 음란물은 처벌하되 성인물은 산업적 측면에서 바라봐야 할 시점"이라면서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성인물을 일부 개방해야 음성적 소비도 줄어들고 차단할 여지도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