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별세와 관련한 보도 중에는 “갑작스런 부고로 경영권 승계 작업이 가속화”라는 표제의 기사가 있었는가 하면, “조 회장의 부고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는 기사도 있었고, “8일 한진그룹조차 조 회장의 부고를 처음 알리면서”라든가, “갑작스런 부음 소식을 듣고” 등의 기사가 있었다. 다 잘못 쓴 기사이다. “갑작스런 부고”는 “갑작스런 별세”나 “갑작스런 사망”으로 써야 하고, “부고에 깊은 애도” 역시 “별세에 깊은 애도”라고 쓰든가 아니면 “부고를 듣고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는 식의 문장이 되어야 한다. “부음 소식”은 그냥 ‘부음’이라고만 해도 되고, “부고를 처음 알리면서”는 ‘부고를 전하면서’라고 해야 보다 더 어법에 맞는 표현이다.
부고는 ‘訃告’라고 쓰며 각 글자는 ‘부고 부’, ‘알릴 고’라고 훈독한다. ‘訃’는 ‘부고’를 대체할 만한 적절한 말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고 부’라고 훈독하지만, ‘訃’는 본래 ‘점칠 복(卜)’과 ‘말씀 언(言)’이 합쳐진 글자로서 ‘이미 점쳐진(卜:누구라도 언젠가는 맞을 운명의 죽음)’ ‘말씀(言:알리는 말)’이라는 뜻이므로 부고는 직역하자면 ‘죽음에 대한 알림’이다. 부음(訃音)은 ‘아릴 고(告)’ 대신 ‘소리 음(音:소식 음)’을 썼을 뿐 ‘訃告’와 완전히 같은 뜻이다. ‘訃告’나 ‘訃音’은 다 ‘죽음을 알리는 것’을 이르는 말인 것이다. ‘訃告’와 ‘訃音’이 가진 이러한 말뜻을 알면 위에서 예시한 4개의 보도기사 표제가 잘못된 것임이 자명해진다.
요즈음이야 핸드폰 단체문자 몇 통이면 수백 명에게 부고를 전할 수 있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이 죽으면 심부름꾼이 직접 부고장(부고편지)을 들고 사망한 사람의 지인이나 그 자손들의 지인에게 달려갔다. 부고는 안 보내고 또 안 받고 싶지만, 언젠가는 보내고 또 받게 될 운명의 통지서이다. 나의 죽음에 대한 부고를 받는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