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반도체 산업구조 선진화 방향-반도체 산업의 토대 ‘장비·부품·소재’

입력 2019-04-10 17:41 수정 2019-04-1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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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범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 대표, 프뉴마 대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국무회의에서 “비(非)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경쟁력을 높여, 메모리 반도체 편중 현상을 완화하는 방안도 신속히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협회·학회 등의 의견을 수렴하여 육성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반도체 업계에서는 지난해 우리나라 총수출(6055억 달러)의 22.1%(1267억 달러)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인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며 정부의 육성 정책에 기대하고 있다.

메모리·비메모리를 포함한 반도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가장 시급한 현안은 인력 양성과 더불어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아우르는 건실한 선순환 생태계 조성, 즉 장비 및 부품·소재 산업의 육성이라는 것이 반도체 업계와 학계 등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 및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자료에 따르면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16년 기준 비메모리(2621억 달러), 장비·소재(840억 달러), 메모리(768억 달러) 순이다. 메모리 슈퍼호황이라는 특수한 시기(2017년 비메모리 2882억 달러, 메모리 1240억 달러, 장비·소재 1035억 달러)를 제외하면 장비·부품·소재가 메모리 시장을 능가하는 큰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메모리 세계 시장 점유율이 60%에 달하는 반도체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장비 국산화율(매출액 기준)은 20% 수준이며 세계 시장 점유율은 장비가 10.1%, 소재는 9.9% 수준으로 생태계가 취약한 실정이다.

우리 반도체 생태계가 취약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일본의 불산 공급 중단 논란을 들 수 있다. 한·일 관계 악화로 지난해 11월 불산 수입이 일본당국에 의해 제동이 걸리자 우리 반도체 산업에 비상이 걸렸다. 웨이퍼 세정 등에 사용되는 불산은 일본 기업이 독점 생산하고 있어 공급 중단 시 반도체 제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를 만드는 소자 대기업 2개가 7만여 명(삼성전자 DS부분 4만5000여 명, SK하이닉스 2만5000여 명)의 인력을 고용하고 있는 데 비해 반도체 장비 및 부품·소재 업체(10인 이상 고용)는 2만8000여 개로 고용인력도 143만 명에 이른다.

메모리·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뒷받침하고 있는 이들 중견·중소 장비 및 부품·소재 업체를 육성하는 것이 반도체 산업구조 선진화의 지름길로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고 당면 현안인 고용 창출에도 가장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이다.

장비 및 부품·소재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중국은 전 세계 반도체의 60%를 소비하는, 최대 소비국으로 2017년 수입액이 2601억 달러(약 292조 원)로 원유수입(1623억 달러)의 160%에 달한다. 현재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20%에 못 미치는데 이를 2025년까지 70%로 끌어올리기 위해 국가 주도로 적극적인 반도체 굴기를 추진 중이라, 이를 장비 및 부품·소재 산업 글로벌 시장 확대 기회로 적극 활용하는 능동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반도체 업계 및 학계에서는 산업 발전을 위해 규제 샌드박스 도입 등 규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현 정부의 디스플레이·반도체 장비 국가핵심기술 지정 등 글로벌 시장 진출을 저해하는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소탐대실’이라는 비판 여론이 높다.

미국과 일본은 반도체 소자산업을 우리나라에 넘겨주면서 장비 및 부품·소재 산업을 육성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 정부의 중국 푸젠진화에 대한 미국 기업 수출 규제로 푸젠진화가 폐업 위기에 몰리고 있는 상황과 일본의 불산 수출 금지 논란 등에서 장비 및 부품·소재 산업의 중요성을 잘 알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거울 삼아 우리도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계기로 메모리 소자산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벗어나 중견·중소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장비·부품·소재 산업 육성을 통한 글로벌 시장 확대 및 고용 창출 등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로운 대응이 필요하다.

비메모리 육성 등 산업구조 선진화를 통한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산업을 뒷받침하고 있는 건실한 생태계 조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또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정부 대책에도 중견·중소 업체들의 경쟁력 강화 및 글로벌 시장 진출 지원을 위한 규제개혁 등이 중요한 주제로 다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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