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인도 화폐개혁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입력 2019-04-03 17:43 수정 2019-04-0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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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

최근 디노미네이션의 시행 가능성을 묻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여기서 잠깐 용어를 정리하자면, 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은 보통 동전이나 지폐에 대한 통화 금액의 단위를 나타내는 말인데 화폐개혁이나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이라는 용어와 혼용되곤 한다. 현재의 화폐(구권)를 새로운 화폐(신권)로 교체하거나 혹은 화폐의 단위를 아예 바꾸는 것인데, 이 글에서는 ‘화폐개혁’이라는 용어로 통일한다.

화폐개혁의 가능성이 2000년대 중반 이후 10여 년 만에 다시 부각되는 이유에 대해선 세세하게 다룰 생각이 없다. 국가의 위상에 맞지 않게 원화의 가치가 낮다거나 혹은 부패를 청산하기 위해 화폐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름대로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화폐개혁 이후 어떤 경제적 충격이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전미경제분석국(NBER)에 발표된 흥미로운 논문 ‘현금과 경제: 인도 화폐개혁으로부터 얻어진 증거들’은 화폐개혁 이후 인도 경제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파헤친다. 참고로 인도 정부는 2016년 11월 9일 자정 이후 500루피와 1000루피 등 고액권 화폐의 통용을 일절 금지하는 한편, 11월 10일부터 500루피와 1000루피 신권을 통용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신권 발행량이 충분하지 않았기에 10일부터 시작되는 신권 교환은 4000루피 한도 내에서만 교환이 가능했다.

코도로 라이치 등 3명의 연구자에 따르면, 화폐개혁 이후 인도은행의 신용 규모가 무려 2%포인트나 줄어들며 경제에 심각한 충격이 발생했다. 연구자들은 화폐개혁 이후 통화 공급 감소 충격으로 3%포인트 이상의 성장률 하락이 출현하는 한편, 특히 고용률이 2%포인트 가깝게 떨어지는 등 노동시장에 미친 충격이 지대했다고 지적한다. 참고로 고용률이란 15~64세 인구 중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의 비율을 의미한다.

인도 화폐개혁이 큰 후폭풍을 일으킨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저자들은 논문에서 “현대 인도 경제에 있어서, 충분한 지폐의 공급은 경제 활동 촉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즉, 현대 경제에서는 이자율이 중요하지 지폐의 공급 문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지폐 공급이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자 인도 경제 전반에 심대한 충격이 발생하더라는 것이다. 화폐개혁의 충격이 더욱 확대되었던 이유는 인도의 국토 면적이 대단히 넓고 철도와 도로 등 인프라가 부족했던 데 기인한다. 그 결과 지역별로 신권 공급의 격차가 대단히 컸을 뿐만 아니라, 2017년 3월까지도 구권의 77%만이 신권으로 교환될 정도로 지체가 심각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물론 인도 화폐개혁이 모든 경제 분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핀테크 업체 및 신용·현금 카드 산업은 공전의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지폐 의존도가 높았던 인도 사람들을 강제로 신용거래의 세계로 유입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이후 신용카드 및 핀테크 산업은 강력한 성장의 계기를 맞는다.

이상과 같은 인도의 경험은 한국에 두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한국은 인터넷뱅킹 등 다양한 종류의 금융혁신이 진행되었기에, 화폐개혁이 시작된다고 해서 인도처럼 심대한 경제에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특히 국토 면적도 인도보다 훨씬 좁아서 신권 교환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도의 경험처럼, 경제에 예상치 못한 충격이 미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화폐개혁을 추진했던 인도 정부는 카드 혹은 은행에서의 이체 등을 통해 충격이 분산될 것이기에 화폐개혁이 이렇듯 극심한 충격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논문에서 “인도의 현금 부족 사태는 미국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단번에 2%포인트 인상한 것 같은 경제적 충격을 미쳤다”고 묘사할 정도의 후폭풍을 맞고 말았다. 따라서 어떤 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선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른 나라에서 이뤄진 경험을 신중하게 분석하고, 또 예상이 빗나갈 위험이 있는지 등을 충분히 대비, 재점검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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