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치러진 국민투표가 EU 탈퇴 문제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여기에 크게 기여한 영국독립당(UKIP)과 친(親)브렉시트 진영이 제시하는 논리는 막연한 경제적 이익과 EU의 내정 간섭을 벗어나 자주권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미 다국적 기업들의 영국 이탈과 일자리 상실이 현실화되고 있어 경제적 이익이 망상임을 보여준다.
UKIP는 유럽 대륙을 지배했던 19세기 나폴레옹의 프랑스나 20세기 히틀러의 나치 독일도 해협을 건너 영국을 침공하지 못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브렉시트는 또 다른 형태의 대륙 국가들의 족쇄를 박차려는 용트림이라 할지 모른다. 그런데 나폴레옹의 패배에는 다른 유럽 국가들의 역할이 컸으며, 나치 독일의 패망에는 미국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영국과 대륙의 유럽 국가들은 다방면에서 뒤섞이며 공존해 왔다. 정치뿐만 아니라 언어에 외세가 크게 영향을 미친 예가 바로 ‘정복왕 윌리엄’이다. 11세기 초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를 지배하던 그는 영국을 침략해 왕위에 오른 뒤 기존의 영국 봉건 영주들을 대거 축출하고 자신의 부하들에게 토지를 분배했다. 프랑스어를 쓰던 이들의 후손들이 1215년 당시 군주였던 존 왕을 압박해 라틴어로 작성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에 서명토록 했다.
정복왕의 프랑스 영토를 근거로 영국은 15세기 초까지 프랑스 중북부 지역에 큰 영토를 보유했던 과거에는 도버해협이 국경과는 무관했다. 영국은 ‘100년 전쟁’에서 패할 때까지도 프랑스에 상당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영토를 프랑스 왕국에 넘기며 영국이 섬나라가 된 것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할 즈음이다.
그 후에도 영국이 외세를 동원해 내부의 큰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있었다. 17세기 후반 영국의 왕정을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 ‘명예혁명’이다. 네덜란드의 오렌지공이 영국 내 가톨릭이 다시 커지는 것을 막으려는 영국 내 신교 세력(성공회)들의 지지를 받으며 대규모 병력을 동원, 영국을 침공해 왕(윌리엄 3세)이 되었다. 영어에 능통치 않은 군주가 18세기 초까지 군림했었다.
EU 탈퇴파가 제시한 이유들을 보면 터키가 EU 회원국이 될 경우(현실적 개연성 0) 대규모 인구 유입이 있을 거라는 인종주의 공포 마케팅을 위시해 에너지 효율 강화, 재활용 강화에 따라 발생하는 일상생활의 불편이 EU 규제 때문이어서 탈퇴하면 이런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내용도 많다. 2016년 국민투표 결과 분석을 보면 저학력의 60세 이상 고령 백인층에서 탈퇴 지지율이 가장 높게 나왔다. 그런데 지난주 런던에서 100만 명 가까운 인원이 참여했던 반(反)브렉시트 시위대의 대부분은 청년이었다. 즉, 브렉시트에 찬성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퇴해 경제적 기회에 관심이 없을 때쯤 이 청년들은 EU의 넓은 무대에 접근이 제한된 채 미래를 맞아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탈퇴를 선동하는 정치인들의 무책임에 육두문자가 나올 만하다.
EU의 족쇄만 벗어나면 나라가 번성할 것이라고 혹세무민한 브렉시트 선동가의 모습과, 지금 우리나라에서 반일(反日)을 열심히 밀어붙이는 정치세력들이 오버랩되는 것은 필자만의 착시일까? 학교 내 일본 제품에 전범기업 딱지를 붙이며 반일에 나서면 그 학교 학생들의 미래가 더 나아질까? 자신들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집단에 반발해 런던의 거리를 가득 매운 청년들을 보며 한국의 지도층은 경각심을 느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