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대표는 이날 워싱턴DC에서 열린 핵 정책 콘퍼런스 좌담회에서 “북한은 WMD(대량살상무기) 제거에 대해 완전하게 약속해야 한다”며 이같이 못 박았다. 단계적 비핵화가 아닌 한번의 일괄타결을 통한 ‘빅딜’로 끝내야 한다는 게 미국 정부의 입장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빅딜’ 선택을 압박받는 상황이 돼 중재자로 나선 문재인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졌다.
비건 대표는 “문은 열려 있다”며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위해 북한과 계속 협력하고 긴밀한 대화가 지속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협상 여지를 남겼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 선봉에 나선 강경파인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1일 오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전화 통화를 통해 후속 대책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외교·안보상 확인해 줄 수 없다”면서 “한미 양국이 긴밀한 소통을 유지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특히 정 실장이 지난 주말 비공개로 중국을 방문해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을 만난 것으로도 알려졌다.
하지만 미 정부가 제재 틀 내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추진에 대해 ‘비핵화 없이는 대북제재 완화는 없다’고 못 박으면서 김 위원장을 설득할 문 대통령의 카드가 마땅치 않아 고민에 빠졌다. 특히 청와대는 북한의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복구 움직임에 대한 진위와 북미 하노이 담판 ‘노딜’ 이유에 대한 정확한 상황 파악이 돼야 움직일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도 12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하노이 회담 합의가 무산된 원인을 분석하고 북미의 입장과 요구를 다 점검한 다음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무 서두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대화가) 너무 딜레이되면 모멘텀을 잃는다“며 ”지난해 5월처럼 판문점 같은 곳에서 남북 정상이 만날 수는 있으나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내부 정치 상황으로 사실상 3월 한미 정상회담이 물 건너간 상황인 만큼 문 대통령이 먼저 대북 특사 파견이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해법 찾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