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건만 따지면 추경을 편성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재정법은 추경 편성의 요건을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경기침체 등으로 규정하고 있고, 미세먼지는 대규모 재해 중 자연재해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상 자연재해 중 하나로 통상 3~5월 창궐하는 황사와 겹쳐 대기 질을 급격히 악화시킬 수 있어서다.
국회에는 미세먼지를 재해에 포함하는 내용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개정안이 처리되면 요건 논란은 완전히 해소된다. 정부 관계자는 7일 “여야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했으니 재해냐 아니냐의 논란은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단, 추경의 필요성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부호가 따른다. 올해 예산에 미세먼지 대응 용도로 학교 공기정화장치 보급(620억 원) 등 1조9000억 원이 편성돼 있고, 자연재해 대응에 사용되는 목적예비비도 1조8000억 원이나 된다. 여기에 1조2000억 원의 일반예비비도 있다. 청와대가 밝힌 추경의 목적은 공기정화장치 보급 확대와 중국과 공동협력 사업 추진이다. 이들 목적에만 재정을 집행한다면 예비비 내에서 소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관건은 앞으로 나올 미세먼지 긴급대책에 소요될 재정 규모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 사태 때처럼 내수경기 부양 목적의 사업들이 포함된다면 소요재정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메르스 추경은 그 규모가 11조6000억 원에 달했다. 사태의 시급성을 고려하면 추경 편성보단 예비비 집행이 적정하다는 지적이다. 추경안이 국회 상임위원회에 상정되고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진 통상 보름에서 1개월이 소요돼서다. 2000년 추경은 99일이나 걸렸다.
정부도 우선은 예비비 등 기존 예산의 활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어제 홍 부총리도 말했듯, 우선 미세먼지 관련 대책이 나와야 하고 거기에 재원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봐야 한다”며 “현재 단계에서는 단정적으로 어떻다고 말하긴 어렵고, 소요가 얼마나 되는지, 기존 예산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부터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