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노사가 신임 사외이사 자리를 두고 ‘동상이몽’에 빠졌다. 은행을 위하는 마음은 같지만 노동조합에게는 노동 이사제 인식 전환의 발판인 반면 경영진에게는 정부와의 역학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통로다. 기업은행 노조 추천이사제 실현이 멀어져가는 이유에 ‘시기상조’나 ‘절차 미비’가 아닌 ‘보이지 않는 손’의 영향이 미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기업은행은 지난달 임기가 만료된 이용근 사외이사의 후임 선정 작업이 한창이다. 기업은행 노동조합은 지난달 25일 박창완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위원을 신임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기업은행 노조와 금융산업노동조합은 ‘노동자 추천 이사제’ 도입을 위해 청와대, 국회, 정부를 찾아 제안서를 전달하며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은행 이사회 관계자는 3일 이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정부에서 정해진 것도 아니고 (노조 추천 사외이사 관련) 안건을 상정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기업은행 내부규범에 따라 사실상 이사회 운영위원회의 관문을 넘지 못하면 은행장 제청과 금융위원회 임면 단계까지 도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노조의 주장이 관철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핵심은 기업은행의 ‘정부 눈치보기’다. 기업은행의 이번 의사결정에도 최대주주인 기획재정부와 불가피한 마찰을 피하겠다는 셈법이 깔려있다.
기업은행은 기재부가 지분 50.9%을 보유하고 있는 금융 공공기관이다. 기업은행 노조가 여러 절차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협조만 있으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보는 이유다. 하지만 이를 거꾸로 뒤집어 보면 관피아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업은행의 행장 및 이사의 임면권한을 갖고 있는 금융위원회는 이 사안에서 한발 물러섰다. 금융위는 기업은행 내부 선임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지난달 18일 “여타 산업부문에 앞서 금융부문에서 (노동이사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해야 할 필요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권은 기업은행 사외이사가 이미 누가 올지 정해졌을 것이라고 관측한다. 그동안 기업은행 사외이사 선임은 대개 은행장 제청 없이 정부가 지정한 인물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게 관행이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법규, 내규 등에 적힌 글귀보다 뛰어넘기 힘든 건 기업은행을 통제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