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창업을 생각한다면 가장 중요하고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무엇을 할 것이냐이다. 이를 찾기 위한 노력에서, 특히 처음으로 벤처를 시도하는 창업자들이 하는 실수가 바로 마켓 수요와 모델 정립을 예언자(prophet)의 자세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즉, 머리와 가슴에서 나오는 영감과 추측으로 무엇이 미래이고, 미래에는 무엇이 나올 것이고 어찌 바뀔 것이니, 무엇을 하면 될 것이다라고 예언가나 점장이처럼 그려내는 것이다. 이런 접근 방법이 초기에는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다음에 따라와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검증 단계, 즉 그림으로 그린 수요와 모델이 실제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단계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현재 확실히 존재하지 않는 미래에 대하여 시장이 주는 정보는 그 시그널이 매우 약하고, 깨끗하지 않으며, 다변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겪어 보지 않은 미래에 대한 이런 정보를 처리하는 데 있어, 예언가적 자세는 인간의 자기확증편향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 일단 창업자는 본인이 그려낸 미래를 증명하는 증거를 찾고자 더 노력하고, 그런 증거가 사실이라고 믿으며, 그런 증거에 비중을 더 두는 경향을 만들게 된다.
사실 어떤 것도 본인이 많은 시간과 열정으로 진행하다 보면 그것의 객관적인 가치보다도 더 애정하고 애착하게 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상대의 결점에 대해 관대하듯이, 본인의 비즈니스 모델이 마켓이 원하지 않은 것이라든가 수요가 크지 않다는 아픈 사실을 평가하기도 받아들이기도 힘든 경우가 많다.
흔히 창업자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노력을 덜 해서, 기술이 모자라서, 위험을 피하려는 성향이라서, 네트워크가 모자라서라고 생각하는데, 적어도 필자의 경험에서 보면 벤처의 가장 큰 실패 이유는 예언가의 접근으로 자신이 그려낸 그림을 그리고 맞추려다, 결국 많은 노력과 자본을 탕진한 후에 자신의 예언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낸 상황이 많았다.
운이 좋아서 또는 너무나 신통하여 내가 예언한 미래에 예언했던 요구 수요가 예언한 것만큼 충분하면 좋겠으나, 이는 확률이 낮은 게임이다. 사실 조금 더 탄탄하고 성공 확률이 큰 방법은 예언자가 아닌 강력범 형사(detective)의 자세로 창업 아이디어를 만들고 진행하는 것이다.
모호하고 난해한 사건을 풀기 위해서 형사는 한 명의 용의자를 추구하지 않는다. 여러 가능성에 여러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고 그 시나리오에서 이 범죄를 통해 이익이 가장 상충되거나 혜택받을 사람을 중심으로 용의자를 추려나가기 시작한다. 또한 예언과는 달리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아주 근접하고, 사건 관계자들과 밀접하게 엮이고,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그려야 한다. 이런 시나리오를 검증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용의자와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현장을 살피고, 과학적 검증을 해보며 조금 이상하다 생각이 드는 작은 실마리라도 무시하지 않고 진행하여야 한다.
형사들의 결정에 더 중요한 것이 영감이 아니라 증거이다. 각각의 시나리오가 다 틀릴 수도 있다는 자세로, 크고 작은 증거를 바탕으로 퍼즐을 맞추듯이 마지막 그림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더불어 각 시나리오를 기각하고 채택하는 데 있어 객관적 평가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검증한 결과가 부정적이면 과감히 버리거나 다시 시나리오를 작성하거나 수정하며 주요 진행 경로를 틀어야 한다.
벤처 모델들을 평가하다 보면, 창업가가 아이디어를 예언가의 자세로 만들었는지 형사의 자세로 만들었는지 쉽게 답이 나온다. 평가하는 입장이나 펀드를 주고자 하는 입장에서 어떤 그림이 더 호소력이 있을지는 설명이 필요 없다. 특히 형사적 접근 방법은 펀딩 결정에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좀 더 확실히 명시하고 소통할 수 있기에 펀딩을 추구하는 창업자라면 더욱더 형사로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