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 장소가 베트남으로 정해진 데에는 여러 배경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원인은 북한이 베트남의 1980~90년대 개혁 성공 노하우를 직접 보고 배우려는 것이라고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분석했다.
르 당 도안 전 베트남 총리 선임 경제고문은 “최근 3년간 북한 인사들이 베트남을 방문하고 있다”며 “북한은 동남아시아의 경제 변화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의 전쟁 이후 적대적 관계 속에서 오랜 기간 빈곤국이었던 베트남은 북한이 꿈꾸던 변화를 먼저 보여줬다. 핵심 키워드는 바로 ‘도이머이(Doi moi·쇄신)’였다. 미국 등 서방국과의 ‘데탕트(긴장완화)’를 다지며 고속 경제성장의 길을 걸으면서도 공산당 일당지배체제를 유지한 것이다. 베트남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도이머이가 시작된 1986년 이후 지금까지 10배 늘었다.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투자가 이런 베트남 경제성장의 주요 원동력 중 하나였다. 미국은 또 베트남의 중요한 수출시장으로 부상했다.
어떤 의미에서 1980년대 중반 베트남의 상황은 현재 북한과 비슷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제재로 휘청거려온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개혁개방은 스스로 기존 체제를 무너뜨릴 위험을 내포한다. 베트남은 이런 리스크를 극복하고 승승장구하는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해 7월 하노이를 방문한 자리에서 “오늘날 베트남이 우리와 파트너십을 맺고 이렇게 번영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베트남의 길을 재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 기회를 잡으면 김정은 위원장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미국 협상단의 목표인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포기에 내딛으면 에너지 공급망과 농업 부문에서 미국의 대북 투자가 쇄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에 따라 북한은 로켓처럼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자신했다. 중국과 한국도 제재로 막혀 있는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살릴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대학교의 김병연 교수는 WSJ에 “시장경제로 전환한 국가 중 베트남 모델이 북한과 가장 가깝다”며 “베트남은 경제를 개혁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했지만 이는 기존 정치체제가 생존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트럼프와 싱가포르의 휘황찬란한 거리를 산책했다. 싱가포르는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가 아니지만 수십 년 동안 일당지배체제가 계속되고 있다. 북한 관리들은 또 공산당 정권이면서 자본주의를 구가하는 중국의 산업시설도 시찰하고 있다.
팜 빈 민 베트남 외교장관은 23일 “우리는 국가 건설과 사회주의적 발전, 국제적 통합 등에 대한 경험을 북한과 공유할 준비가 됐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