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처한 상황이다. “투자금 회수 방안을 마련하라”고 엄포만 놓던 재무적투자자(FI)들이 이번엔 진짜 칼을 빼 들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경영 승계는커녕 최악의 경우 신 회장마저 ‘교보 배지’를 떼야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교보생명 FI들은 이달 내로 대한상사 중재위원회에 손해배상 중재를 신청할 계획이다. 풋옵션(지분을 일정 가격에 되팔 수 있는 권리)을 가진 어피니티(9.05%)를 비롯해 SC PE(5.33%), IMM PE(5.23%), 베어링PEA(5.23%) 등 4곳이 주축이 돼 서류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싱가포르투자청(4.5%)은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의 교보생명 지분 24%를 사면서 2015년 말까지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으면 신 회장에게 지분을 되파는 풋옵션을 받았다. 3년간의 기다림 끝에 지난해 말 증시 입성 약속을 받아냈지만, 문제는 가격이었다.
공모주 시장 침체로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현재 시장가치는 주가순자산비율(PBR) 0.3~0.5배까지 떨어져 있다. 교보생명 자기자본 약 9조 원에 0.5배의 PBR를 적용하면 기업가치는 5조 원에도 못 미친다. FI 연합은 IPO로도 투자금 회수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만약 중재위가 신 회장에게 지분과 관련한 구체적인 협상안을 제시하면 그는 경영권에 위협을 받게 된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신 회장 지분율은 33.78%(692만5474주)다. 여동생 경애(1.71%)·영애(1.41%) 씨의 지분을 모두 끌어모아도 40%가 안 된다. FI 연합보다 적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FI들이 투자금 회수를 위해 그룹 매각에 나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신 회장의 유일한 위기 타파 카드인 IPO도 꼬이고 있다는 점이다. FI들이 중재 신청에 나서면 관련 절차는 사실상 중단된다. 주주 갈등을 이유로 한국거래소에서 상장 예비심사를 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FI 중재위 신청과는 상관없이 5월께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하고 9월 목표로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