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시점이 다가오면서 세계 금융지도가 변하고 있다. 브렉시트 진행 추이를 지켜보던 미국 금융회사들이 런던에 있는 자회사를 EU 다른 나라들로 이전하기 시작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은행들이 한 지역에서 영업하던 그동안의 관행에서 벗어나 여러 도시로 흩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대형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프랑스 파리로 유럽 트레이딩 부문의 본부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BoA 부회장 앤 피누케인은 “돌아갈 일은 없다”며 “파리도 유럽 금융거래의 새로운 거점이 될 것”이라고 유럽재정포럼에서 말했다. BoA는 유럽 본사를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옮겼다.
다른 금융회사들도 움직이고 있다. 모건스탠리가 유럽 핵심 지사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옮길 계획을 밝힌 데 이어 골드만삭스와 씨티그룹도 프랑크푸르트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미국 은행들은 현재까지 런던에서 다른 국가로 1000명 미만의 인력만 이동시켰지만 브렉시트 시한이 가까워짐에 따라 인력이동은 5000명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이같은 금융회사들의 ‘엑소더스’는 금융 허브로서 런던이 가졌던 이점이 브렉시트로 사라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런던에 지사를 내면 28개 EU 회원국 전체에서 은행 업무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브렉시트가 예정대로 마무리 돼 영국이 EU에서 완전히 탈퇴하게 되면 더 이상 런던 은행 면허로는 EU에서 사업을 할 수 없게 된다.
미국 금융회사들의 이같은 움직임에 유럽 각국 도시들도 발빠르게 나서고 있다. 이들은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7%를 차지했던 산업 분야를 끌어들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프랑스다. 프랑스는 지난해 7월 ‘파리를 유럽의 금융수도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금융회사를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를 인하하고 금융 고소득자에 대한 누진세를 폐지하는 등 금융 규제를 완화했다. ‘파리를 선택하라’는 주제로 글로벌 투자 프로젝트도 발표했다. 2021년까지 파리 서부 외곽인 라데팡스 지역에 초고층 건물 7개를 지어 새로운 금융지구를 조성할 계획이다. 독일은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금융허브를 선점하기 위해 노동법까지 고치고 있다. 해고를 어렵게 하는 독일 노동법에서 금융회사를 제외하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유럽 각국 도시들로부터 구애를 받고 있는 미국 금융회사들은 그러나 한 곳에 집중하는 전략은 피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파리와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해 이탈리아 밀라노, 아일랜드 더블린,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페인 마드리드 등 EU 각국으로 뿔뿔이 흩어질 것으로 보인다. 회사 이전 전문업체 카터스의 데이비드 패스코 상임 부회장은 “금융회사들이 한 곳을 거점으로 삼았던 방식이 가진 리스크를 더는 지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 금융회사들이 움직이면서 금융지도가 새롭게 짜이고 있지만 금융산업은 물론 유럽 경제가 떠안아야 할 부담도 커졌다. BoA는 자산과 인력을 더블린, 파리로 옮기는 데만 4억 달러의 비용이 들었다고 밝혔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2030년까지 영국과 EU시장에 생긴 새로운 장벽으로 인해 금융회사들의 생산성이 연간 600억 유로(76조3400억원) 가량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