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식량 특집 1편>에 이어 준비한 독일과 한국의 전투식량 품평회다.
안 그래도 1편 서론이 몹시 길었으니 곧바로 독일 전투식량 맛 분석부터 들어가보자.
◇독일: 외국군 따라가야 한다면, 난 독일군 따라갈래
독일 전투식량은 프랑스 전투식량을 구입한 업체에서 함께 샀다. 독일 제품은 프랑스와 달리 1인분 정도 분량이 들어 있었다.
메인 메뉴는 ‘슈프레헤 포크 굴라쉬 스튜’와 ‘슈프레헤 메트부어스트와 완두콩 스튜’ 2종이 프랑스처럼 통조림에 담겨 있었다. 굴라쉬는 헝가리식 스프를 일컫는 말이고, 메트부어스트는 소세지의 일종이라고 한다. 스튜는 우리에겐 조림과 비슷한 음식이니 적당히 번역해보면, ‘돼지고기 조림’과 ‘소세지와 완두콩 조림’쯤 되겠다.
독일 전투식량의 두 메인메뉴는 누구나 알기 쉽게 비교할 수 있는 유사한 음식이 있다. 붉은색 ‘돼지고기 조림’은 ‘고추참치’ 맛이, 흰색 ‘소세지와 완두콩 조림’은 ‘야채참치’에 소세지 넣은 맛이 난다는 데 모두가 동의했다.
물론 두 음식의 안에 든 감자, 당근, 돼지고기, 완두콩 등은 각각의 재료 맛이 났다. 다만 그 양념의 베이스가 ‘고추참치’, ‘야채참치’의 맛이 뚜렷했기 때문에, 해당 재료들을 각각의 참치 양념 맛으로 비벼서 먹는 맛이라고 하는 게 가장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맛의 질은 왠만한 한국인이라면 특별히 남기지 않고 다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만큼 괜찮은 편이었다.
'독일하면 소세지'인 만큼 소세지, 아니 메트부어스트의 평가도 빼놓을 수 없다. 일단 아무래도 전투식량이라는 한계 탓에 아쉽게도 “이야, 이게 독일 소세지구나!” 할 만한 맛은 아니다. 그래도 전투식량 치고는 꽤 훌륭한 맛이며, 소세지라기보다는 익힌 고기에 가까운 풍미에, 일반 소세지보다 훨씬 잘 으깨지는 부드러운 식감이라는 평이었다.
디저트로는 치즈와 비스킷, 초콜릿, 누가바가 들어 있었다. 먼저 비스킷은 프랑스의 그 이빨이 상할 듯한 비스킷과는 전혀 다르게, 평범한 강도의 과자였다. 덜 딱딱한 건빵 맛과 유사하다는 평이 가장 근접한 비유였다. 치즈는 대단히 훌륭한 맛의 프로마주 치즈로, 비스킷에 올려 먹으면 금상첨화라고 부를 만했다.
어허…굉장히 불편한 그림이 새겨진 초콜릿이다. ‘쇼카콜라’라는 매우 유명한 독일산 초콜릿이다. 이름의 ‘콜라’는 탄산음료 콜라가 아니라 콜라나무를 의미한다.
‘쇼카콜라’는 1936년에 발매되어 2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독일 육·해·공 전군에 지급된 보급품이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함께 추축국의 일원이었으며, 또한 패전국이기도하다. 그 당시부터 먹던 독일 초콜릿에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문양을 그려넣다니, 어허…. 기자만 특별히 예민한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이와 별개로 맛은 준수했다. 초콜릿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기자 2명도 맛있게 먹었으며, 시중 상품과 비교하자면 드림카카오와 비슷한 맛이고, 당도는 드림카카오 56%와 72%의 중간 정도의 단 맛이 났다.
아래는 독일 전투식량에 대한 각 기자들의 평가다.
< 독일군 전투식량 평가 >평점: ★★★☆ (5개 만점, 소수 첫째 자리 반올림)
A(남·29): ★★★☆ / 타국 전투식량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괜찮았던 맛
B(남·36): ★★★☆ / 메뉴 간 조화가 어울리는 음식. 아예 먹을 수 없는 프랑스와, 디저트만 훌륭한 미국과 비교할 때 주식부터 디저트까지 이어지는 메뉴 구성이 딱 맞음
C(여·33): ★★★ / 한식 외에 아무 음식도 못 먹는 극단적인 입맛이 아니라면 누구나 즐길만하다. 미국, 프랑스, 독일군이 식사에 초대한다면, 독일군 앞에 줄을 서겠다
D(여·26): ★★★★☆ / 미국, 프랑스에 비해 크게 상향 평준화되어 있는 느낌
◇한국: Do you know ‘볶음김치’??
대망의 한국 군용 전투식량 체험은 마지막에 진행했다.
우선 군용 전투식량을 드셔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발열백 사용 방법부터 살펴보자. 발열백의 밑에 레토르트 파우치에 포장된 전투식량(아몬드케이크는 제외)을 넣는다. 발열백의 위를 뜯어보면 안에 잡아당기는 줄이 연결돼 있다. 이것을 잡아당기면 줄이 분리되고 곧바로 발열백이 가열된다. 수분이 지나 적당한 온도가 되면 전투식량을 꺼내 도시락에 담아 먹으면 된다. 전투식량을 꺼낸 발열백에 다시 아몬드케이크를 넣어 후식으로 먹는다.
볶음밥, 소세지, 콩 밑반찬, 그리고 김치! 그래,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식사’의 모습이 아니던가! 치즈 한 통을 다 부어 만든 것 같은 느끼하고 질척한 리조또 같은 것을 먹으며 어찌 적군과 싸울 힘이 날까.
볶음밥은 ‘볶은’ 식감을 살리기 위한 과정이었는지 다소 푸석푸석한 맛이다. 소세지는 진짜 소세지라기보다는 3분 요리에 나오는 미트볼과 비슷한 식감과 맛. 쇠고기콩가미라는 이름의 콩 요리는 체험자들이 먹어본 그 어떤 전투식량의 콩요리보다도 맛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사실 한국 전투식량 체험 직전까지 참여한 기자들은 모두 언제까지 이렇게 느끼하고 입에 안 맞는 서양 전투식량만 먹일 것이냐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들의 불만을 일거에 잠재운 단 하나의 음식은 ‘볶음김치’였다. 키야!! 여기 김치 한 사발 주소!!
“이제 살 것 같다”, “한국인은 역시 김치다”, “다시는 김치를 무시하지 마라” 등…. 한국 전투식량 평가의 거의 절반 이상이 ‘김치’라는 음식이 얼마나 훌륭한 음식인가에 대한 칭송으로 채워질 정도였다. 볶음김치의 질이 시중에서 파는 제품이라 해도 손색없을 만큼 훌륭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진은 독자들이 보기 쉽도록 각 메뉴를 따로 담아서 촬영했다. 근데 원래는 군대 훈련 중 전투식량의 각 메뉴를 따로따로 먹으면 선임에게 혼이 난다. 기자도 그렇게 먹다 당시 선임에게 혼났다.
전투식량 한 팩에 종이도시락이라는 부수자재를 단 1개 지급하는 이유가 있다. 원래 전투식량은 이 도시락에 다 부어 섞어 먹는게 올바른 취식방법이다. 일단 그게 훈련이나 전투상황에 빠르게 식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뭣보다 예전부터 관례적으로 그렇게 먹어왔기 때문에 병사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가르쳐준 대로 다같이 비벼서 먹는다. 원래 군대는 시키는 대로 하니까 군대인 것이다.
겉보기에 따라서 싫어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지만, 생각보다 훌륭한 맛의 비빔밥이다. 급식 먹을 때 먹을 만한 이런저런 음식을 함께 비벼 먹을 때의 맛과 유사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디저트는 아몬드케이크와 초코볼이 제공된다. 기자는 군 생활 중 전투식량에 든 아몬드케이크를 안 좋게 평가하는 사람을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선임이라고 해도 훈련중 전투식량의 아몬드케이크를 뺏어먹겠다는 비양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뺏어먹겠다는 발상 자체가 후임에게 몹시 미안한 마음이 들만큼의 맛이기 때문이다. 이날 먹은 아몬드케이크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맛이었다.
마지막으로 초코볼은 특별할 것 없는 초코볼이었다. 오리온 ‘새알’ 초콜릿과 흡사한 맛. 갑자기 생각나는 일환데, 전투식량은 비벼먹어야 된다고 기자에게 말했던 그 선임은 초코볼을 따뜻하게 데워 녹인 뒤 아몬드케이크에 발라먹으면 맛있다고 가르쳐 줬다. 독자들에게는 권하지 않고 싶은 취식법이다. 성철이 형, 내가 8년간 생각해봤는데, 암만 봐도 그렇게 먹는 건 아닌 거 같애….
한국 전투식량의 별점 평가로 4개국 전투식량 맛 평가를 마무리한다. 역시 한국인의 입맛에 최적화한 전투식량인 만큼, 타국의 전투식량보다 한국인 기자들의 평가가 후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은 감안해 주길 바란다.
< 한국군 전투식량 평가 >평점: ★★★★ (5개 만점, 소수 첫째 자리 반올림)
A(남·29): ★★★★☆ / D형 텐트 안에서 분대가 다 같이 먹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가 그립…진 않은데, 아무튼 그때의 맛이 다시 생각난다
B(남·36): ★★★★ / 4000원 정도에 판다면 굳이 군대가 아니라 밖에서도 얼마든지 사먹을 정도의 품질.
C(여·33): ★★★★ / 역시 우리 입맛에 가장 맞는 전투식량인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D(여·26): ★★★★ / 한국인이라면 못 먹을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무난한 음식
◇후기: “먹어보니까, 전쟁이 절대로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4개국 전투식량의 별점 평가는 만점인 별 다섯 개가 “식당에서 파는 음식이라고 해도 사 먹겠다”라는 평가 기준을 세워 매겨졌다. 하지만 보급병 출신인 작성 기자가 매긴 한국군 전투식량 평가도 별 4개 반에 그쳤다. 전투식량은 어디까지나 전투식량인만큼 아무래도 맛을 낼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주로 장기보존 가능성과 관련된 문제일 것이다.
실험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옆에서 구경했던 한 후배기자는 “전쟁이 나서 이런 걸 매일 먹으며 살아야만 한다면, 제발 전쟁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전쟁이 난다고 해서 매일 전투식량을 먹는 것은 물론 아니긴 하지만, 기자도 동의한다. 아무래도 계속 먹기엔 무리가 따르는 음식임엔 틀림없다.
원래 이 기사는 특별한 목적이 있다기 보다는, 그냥 전투식량들이란 어떤 맛인지 소개할 목적으로 작성한 것이다. 그래도 하나 좀 더 뜻있는 목적을 더해 보자면, 이런 전투식량도 너무너무 맛있게 느껴질 만큼, 혹독한 환경에서 국군장병들이 훈련받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께서 공감해 준다면 좋을 것 같다.
체험에 참여한 기자들의 4개국 전투식량 총평을 마지막으로 기사를 마무리 하도록 하겠다.
<미ㆍ프ㆍ독ㆍ한 4국 전투식량 체험 총평>
A(남·29): 타국의 모든 전투식량은 입에 안 맞아서 거의 먹질 못했다. 역시 신토불이다. 키야~! 여기 국군뽕 한사발 주소~! 국군 전투식량을 먹다보니 군 복무 시절이 생각난다. 같이 전투식량을 나눠먹던 57연대 전투지원중대 부대원들이 이 기사를 보고 함께 그때를 떠올려 줬으면 좋겠다. 보급관님, 보고 계십니까?
B(남·36): 확실히 우리나라 전투식량은 우리나라 군인들이 납득할 만한 맛. 하지만 한국군에게 프랑스나 미국의 전투식량을 먹인다면 군 사기가 지극히 저하되고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을까 싶다. 생각보다 김치라는 음식의 영향은 엄청났다.
C(여, 33): 프랑스 전투식량은 ‘이걸 한 입 떠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을때’나 먹을 수 있을 듯하고, 미국 전투식량은 먹으면 ‘그래, 내가 전쟁 중인 지역에 있었지’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맛이다. 독일 전투식량은 ‘외국에 사는 친척집에 놀러갔을 때 친지가 권하면 기꺼이 먹을 만한’ 맛이고, 한국 전투식량은 그냥 급식 끝나고 이것저것 비벼서 먹을 때라고 생각되는 맛이다. 영화에서 군인이 사슴같은 동물을 잡아 먹는 걸 보며 옛날엔 ‘밥이 나오는데 도대체 힘들게 왜 저러지?’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D(여·26): 한 5일 정도는 이것만 먹으면서 살 수도 있을것 같은데, 이걸 1년 내내 먹으라 그러면 틀림없이 미쳐 버릴 것 같다. 이건 입맛에 맞다는 한국군 전투식량이라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