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2000년에 산은이 최대주주가 되며 대우조선해양(이하 대우조선)은 국영 공기업이 되었다. 조선업이 2000년대 중반 엄청난 호황을 누리자 산은은 투입된 공적자금 회수에 나선다. 한화에 약 6조5000억 원에 매각하는 본계약 체결을 앞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매수자가 분할 매수로 방식 변경을 원했지만 산은이 거부한다. 동시에 매수자의 회사 자산 실사가 노조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며 매각이 무산된다. 실사를 막은 것은 상식 밖이었는데, 실제로 작년에 법원은 당시 산은이 받았던 3000억 원의 인수보증금 반환 소송에서 보증금 일부를 반환하도록 판결했다.
공기업 대우조선은 일종의 화이트칼라 범죄의 모델 하우스가 되었다. 주요 회계 법인이 동원된 분식회계, 사장 연임을 둘러싼 로비, 노조 간부의 비리, 산은 경영진이 대우조선을 이용한 비리, 하청업체의 갑질 등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관련 재판에서 주요 관련자들에게 상당한 실형이 줄줄이 선고되었다. 오죽했으면 관료 출신 친여(親與) 원로 인사가 지난 대선 즈음 “수조 원의 적자를 낸 송장이나 마찬가지인 대우조선해양을 살리자는 관료나 지도층은 한 사람도 없고 그 시체를 뜯어 먹는 데만 전념하고 있다”고 일갈했을까.
이 공룡 공기업 대우조선에 2015년 말 이후 2017년까지 약 13조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다. 단일 공기업을 유지하기 위해 투입된 공적자금이 최근 큰 쟁점인 정부의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예타 면제 사업 예산액의 반을 투입했다는 것이다. 사정이 그런 회사의 노조는 작년 여름에는 파업을 하겠다며 사측을 위협했다. 불과 1년 전에 3조 원 가까운 자금 지원을 받으며 파업 등 쟁의를 하지 않고 자구계획에 동참한다고 서약서를 제출했던 노조였기에 언론의 지탄이 이어졌다.
그동안의 구조조정과, 작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던 경쟁사들에 비해 흑자 낸 것을 노조가 내세웠다. 하지만 업황 부진이 길어지면서 경쟁사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그동안 대규모 인력 감축 등 어려운 구조조정을 진행해오고 있다. 얼마 전 흑자여서 자구계획 이행을 위해 추가 비용절감에 미온적이라고 보도되었다. 대우조선의 흑자는 공적자금 외에도 또 다른 공적자금 투입기업인 현대상선으로부터의 선박 수주 등 다른 식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3조 원의 경제적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 단순한 비교를 해본다. 그 액수가 만 명 정도의 종사자를 유지하기 위해 투입됐다. 그런데 작년 말 기준으로 GS, 한화, 신세계 각 그룹 총 발행 주식의 가치인 시가총액이 그보다 낮아서 그 금액이면 이들 중 하나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기업의 종업원 수는 2만~4만 명에 달한다. 이 민간 기업들은 대우조선보다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하고 있으나 정부의 지원 없이도 잘 운영되고 수익을 내고 있다. 하지만 대우조선이 추가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공기업을 이용한 일자리 만들기는 국민의 세금이 매우 비효율적으로 쓰이는 사례를 만든다. 재원의 낭비뿐만이 아니다. 분식회계, 범법자 양산, 하청기업 갑질 등 과거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리던 부실 재벌 뺨치는 행태를 조장했다. 주인이 세세한 사정을 모르는 가운데 대리인(경영자 및 관계 당사자)의 이해가 주인(대주주, 궁극적으로 국민)의 이해와 달라 대리인의 사익(私益) 추구로 나타나는 ‘대리인 문제’의 심각한 예를 공기업 대우조선이 보여주었다.
극단적으로 정부가 민간 기업을 대체하며 쌓인 비효율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이 망했다. 공기업 역할 확대를 경계해야 한다. 합병 전환기에 추가 자금이 투입되더라도 이 공기업을 조선업을 잘 아는 민간 기업에 넘기는 것은 잘된 결정이다. 만시지탄의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