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에 도착하자 눈에 들어온 것은 ‘일하는 노인’이었다. 지난해 12월말 간사이공항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사람은 전동차를 타고 공항을 청소하던,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였다. 리무진 버스 정류장을 찾지 못해 공항을 헤매다 만난 안내 직원도, 버스표를 확인하고 짐을 싣고 내려주는 사람도 나이 지긋한 노인이었다. 일본에 발은 내딛는 순간, ‘일하는 노인사회’가 매스컴에서나 외치는 구호가 아닌, 현실이라는 걸 체감했다.
일본은 2005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국가다. 2018년 기준 일본의 총인구 1억 2652만 9000명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는 3547만 1000명에 달한다. 노인층이 전체 인구의 28%나 차지하는 만큼 이들의 지갑을 여는 것은 일본 경제의 내수 진작과 직결된다. 일본 유통업체들이 노인층을 겨냥한 상품을 경쟁하듯 내놓는 이유다.
기자가 방문한 오사카시는 일본의 ‘쇼핑 메카’다. 난바 역에서 도톤보리를 지나 신사이바시 역까지 이어지는 쇼핑거리는 관광객을 위한, 관광객에 의한 상점이 대다수다. 그런데도 이 쇼핑 관광지에서 늙어가는 일본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존재한다. 신사이바시 역 근처 쇼핑거리에 있는 ‘다이소’ 매장에는 노인층이 자주 찾는 상품만을 따로 모아놓은 코너가 있다. 이 코너엔 지팡이, 틀니 보관용 통과 세척액, 성인용 대소변 시트, 일회용 턱받이, 각종 관절 보호대, 파스 등이 비치돼 있다. 다이소 직원 모나카(38) 씨는 “성인용 대소변 시트가 가장 잘 나가고, 이색 상품으로는 탁자에 고정할 수 있는 지팡이가 있다”며 “이곳은 관광객이 주로 오는 지역이라 노인층 소비자가 눈에 띌 만큼 많지 않지만, 다른 다이소 매장에는 노인층을 겨냥한 상품이 더 많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 편의점도 노인층을 겨냥한 제품을 선보이며 이들의 지갑 열기에 나섰다. 특히 노인 인구가 많은 지역이나 병원 내 편의점은 철저히 노인 고객 중심의 상품 구색을 갖추고 있다. 오사카 난바 역에서 세 정거장 떨어진 츠루하시 역 인근 적십자 병원에는 편의점 ‘패밀리마트’가 입점해 있다. 이곳 편의점의 한쪽 벽면은 노인층을 겨냥한 상품으로 빼곡히 채워졌다. 15가지가 넘는 다양한 종류의 성인용 기저귀, 틀니 세척 솔, 씹을 수 있는 정도에 따라 골라 먹는 간편죽, 머리가 빠진 노인을 위한 모자, 물을 삼키지 못하는 노인을 위해 물의 농도를 조절해주는 제품 등이 주요 상품이다. 편의점 근무 직원인 다나카(65) 씨는 “병원 환자들뿐 아니라 이 지역에 사는 주민들도 이곳 편의점을 많이 찾는다”며 “아무래도 노인들을 위한 제품을 한곳에 모아놓다 보니 노인층의 방문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