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펼치자마자 일상에서 빈번히 만날 수 있는 한 가지 사례가 소개된다. 벗은 속옷을 빨래 바구니에 넣으라는 아내의 당부에도 개의치 않는 남편 이야기가 등장한다.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얘기지만 일상에서 겪는 인간관계와 관련된 문제들은 대부분 이와 비슷하다. 자기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일을 상대방에게 미룸으로써 갈등이 생겨나고 상대에게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 선의라고 말하면서 상대방의 영역을 무시로 침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이가 들어가는 젊은이들에게 “왜 결혼하지 않는가?”라고 만날 때마다 반복하는 것도 상대방의 영역을 침해하는 일이다.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
저자에게 인간관계를 잘 맺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시간과 공간을 타인에게 쉽게 내주지 않는 사람들이다. 한국 기준으로 보면 자칫 지나치게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한·일 간의 차이를 보는 것도 이 책이 가진 묘미다. 이 책의 독자들이 타인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상당한 통제력을 확보할 수 있다. 새해에는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타인의 도움을 청하지 않는 일부터 시작해 보자. 그리고 타인의 일에 개입할 때는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자. 내가 개입할 만한 일인가를 말이다.
인간관계로 고민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누군가에게 결정권을 빼앗긴 경우가 많다. 이들은 큰 일뿐만 아니라 일상 속의 자잘한 결정도 마찬가지다. 결정권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 따르는 리스크를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데 익숙함을 뜻한다. 이 같은 ‘결정습관’을 스스로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인간관계로 인한 문제의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이 지나치게 장황한 상태라면 이를 적당한 선에서 매듭짓고 상황을 종료하는 일도 인간관계의 개선에서 중요하다. 역으로 자신이 이처럼 장황한 사람이 되지 않는 것도 인간관계의 개선에 필요하다. 저자는 가능한 한 대화의 호흡을 짧게 유지하면서 자신의 페이스에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G.F.E.R 대화법’을 추천한다. 목표(G)를 명확히 하고 사실(F)에 근거해서, 감정(E)을 담아서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상대방의 협조(R)를 요청하는 대화법이다. 만나기만 하면 불평불만을 잔뜩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적당한 선에서 주의 전환을 시도하면서 대화를 돌리거나 자리를 뜨는 구체적인 방법을 읽으면 웃게 된다. 세상에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제법 많기 때문이다. 습관적으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는 것은 굳이 간여하고 싶지 않은 영역으로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일과 같다. 상대에게 말려들지 않는 것은 멋진 방법이다. 지금처럼 칙칙한 불황과 불만이 자욱한 시대에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좋은 방법임에 틀림없다.
저자가 의뢰인들을 만나다 보면 의외로 인간관계가 소원해지는 일에 불안감을 갖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듯이 인간관계도 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데 사람들은 유독 인간관계에 대해서만 불변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실용서다. 공병호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