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보고 안타까웠다. 국민이 궁금해 하는 현안이 쌓여 있었지만 질문 펀치는 무뎠다. 허공 펀치 내지 잔 잽만 날리느라 정작 결정적 어퍼컷 공격은 하지 못했다. 허점을 깊이 파고들거나, 연달아 치는 펀치도 없어 아쉬웠다. 질문의 강도도, 심도도 시원치 않아 아쉬웠다.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선 나쁜 질문의 함정을 피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먼저다. 이번 신년 기자회견 질문을 바탕으로 피해야 할 질문 5계(戒)를 알아보자. 이는 일반 소통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거두절미(去頭截尾)형 질문은 피하라. 머리는 인사말을 뜻한다. 무거워서도 안 되지만, 없어서도 안 된다. 간결함은 머리, 몸, 마무리의 비율을 갖춘 것이다. 기본요소를 생략한 채 무조건 짧은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외신과 국내언론 기자 질문에서 차이점 중 하나는 인사말이었다. 외신기자들은 새해인사, 초대감사, 혹은 서투른 한국말 등 나름 성의있게 인사말을 빼놓지 않았다. 간단한 인사, 관등성명의 자기소개 등은 상호 긴장관계를 풀어주는 예의이자 윤활유다. 두세줄이면 충분하다. 초반에 의례적 인사가 지나치면 가분수지만, 없으면 성급하게 보인다. 최근 안부를 물어보는 가벼운 덕담형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머리(소개, 인사)와 몸통 메시지(주요 질문), 마무리(감사)의 비율은 2대 7대 1 정도면 적당하다.
주객전도(主客顚倒)형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질문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영락없이 이런 유형이 눈에 띄었다. 본인 질문은 짧고 인터뷰이의 답은 길게 하는 게 진짜 실력이다. 질문자 역할과 대답자 역할을 헷갈리지 말라. 질문은 궁금한 것을 묻는 것이지, 자신의 주장이나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모니터에 띄울 자신의 질문 캡션 한 문장을 연상해보는 것도 유용하다. 질문 요지 키워드를 사전에 요약, 정리해가라. 내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보다 듣기 위해 질문하라.
교토삼굴(狡兎三窟·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형 질문도 조심 사항이다. 한 사람이 한 번에 너무 많은 질문을 하면 파워가 약해진다. 공을 많이 던지면 한 가지라도 받겠지 하는 꼼수거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어느 경우도 바람직하지 않다. 답변도 지리멸렬해지기 쉽다. 강약약 없이 약약약 나열형 질문은 비유하자면 땅볼이다. 한 사람이 3개 이상의 질문을 연달아 하는 것은 답변을 요구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정말 물어보아야 할 것을 선택해 집중하라.
사면초가(四面楚歌)형 질문을 피하라. 토끼몰이하듯 코너로 몰아대는 압박 질문은 나이와 직급 불문 꼰대스럽다. 진성 사이다 질문은 무리함, 무례함보다 유연한 예리함에서 나온다. 유연성은 당당함과 정중함의 균형에서 우러난다. 겸손함과 배려는 굴종이 아니라 자신감의 표현이다. 범인을 취조하듯 ‘네 죄를 네가 알렷다’, ‘내 말이 맞지’ 하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내 말대로 해)식 질문은 피하는 게 좋다. 질문이 아니라 신문(訊問)이다. 질문은 상대방을 배려하며 생각을 묻지만, 신문은 나의 의견에 대한 동의를 강요한다. 애초에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가의문문형(‘내 생각은 이런데, 그렇지’) 혹은 폐쇄형(네, 아니오로 답하게 하는) 질문을 한다. 이보다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책은 무엇입니까” 등 상대방의 생각을 묻는 개방형 질문을 하라. 과거 발언 대차대조 추궁보다 상대가 쓰고 있는 단어의 구체적 의미를 다시 물어보는 것 등이 더 효과적이다. 동의를 구하기보다 의견을 구하라.
끝으로 격화소양(隔靴搔양·신을 신고 가려운 데를 긁기)형 질문이다. 핵심은 피한 채 변두리만 굽이굽이 돌아 답답한 고구마 질문이다. 긴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면 ‘제 질문은/여쭤보고자 하는 것은’으로 질문을 선두에 배치하라. 그리고 질문 배경(이유와 근거)→사례(현장의 소리)→정리(앞의 질문과의 연계, 환기) 식으로 구성해도 깔끔하다.
이상의 5계만 지켜도 질문의 실격을 피하고 품격을 높일 수 있다. 우문에 현답이란 없다. 질문이 현명해야 답도 선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