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통 안으로 더 들어가면 길게 늘어선 줄이 눈에 들어온다. 재래시장의 대표 맛집(?)에서 호떡을 맛보기 위한 줄이다. 값은 1000원에 3장. 얇은 호떡 껍질 안에 달달한 설탕을 듬뿍 넣어 바삭하게 구워낸 호떡은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일품이다.
한데 호떡 맛보다 더욱 일품인 것은 호떡집 주인 내외분의 스토리다. 호떡 맛은 반죽이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데, 남편이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아내를 위해 호떡 반죽을 한단다. 준비한 양을 모두 소진하고 나면 하루 장사를 끝내고 함께 집으로 향한다는 부부. 당신 소유의 복숭아 농장(5000평 정도 된다고 들었는데…) 관리에 호떡집 운영도 만만치 않건만, 이들 부부는 한 달에 한 번 요양원이나 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께 호떡을 대접해드리는 ‘봉사활동’을 오래전부터 해오셨단다. ‘우리 내외가 열심히 사는 건 행복하자고 하는 일’이기에 1년에 한 번은 꼭 부부가 손잡고 해외여행을 다녀오기까지 하신단다.
호떡집을 지나 오른편으로 난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행복죽집’이 있다. 팥죽에 녹두죽 열심히 팔아 아들 딸 모두 대학까지 공부시켰노라 은근슬쩍 자랑이 넘치는 주인댁 아줌마. 가게 한쪽 벽엔 상인대학 수료식 때 평생 소원이던 학사모를 쓰고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동짓날이면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인데, 마침 재작년엔 딸 친구들이 우렁각시가 되어주었고 작년엔 며느리가 열일 젖히고 달려와 한결 수월했노라 하신다. 새알심 듬뿍 넣은 따끈따끈한 팥죽과 고운 빛깔의 까끌까끌한 녹두죽은 역시 한겨울에 먹어야 제 맛이 나는 듯싶다.
죽집 골목을 빠져 나오니 작은 트럭에 하나 가득 야채를 싣고 온 청년 농부가 기다리고 있다. 마트에선 서너 가닥에 3000원이 훌쩍 넘는 대파가 이곳에선 두툼하게 묶은 한~다발에 단돈 5000원이다. 대파는 겨울 날씨엔 쉽게 상하지 않으니 화분에 심어 겨우내 드시라고 친절히 가르쳐준다. 인삼만큼 좋다는 무도 두어 개 담고 아삭아삭 오이도 한 무더기 샀다. 어느새 단골이 되었다고 덤도 슬쩍 얹어준다.
나오는 길엔 여러 곳이 있지만 유독 북적대는 떡집에 들러 시루떡에 인절미에 콩떡을 담았다. 어린 시절 별명이 ‘떡보’였던 난 명절이나 특별한 생일 아니면 구경도 못했던 떡을 요즘은 사시사철 편히 사먹을 수 있어 뿌듯해하면서도, 예전 그 떡 맛은 어디로 갔을까 입을 쩝 다시기도 한다.
시골 생활 10년 차에 들어서니 이젠 장날에 만나 인사를 나누는 단골도 생겼다. 이곳에선 두어 번만 마주쳐도 어디서 온 누구시냐 통성명을 하고 서로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곤 한다. 어느새 10년 지기인 듯 친밀함을 느끼게 된 까닭인가, 늘 어르신 모시고 함께 다니다가 행여 혼자 장보러 가면 ‘왜 혼자냐구, 어르신은 어디 편찮으시냐구’ 근심어린 눈길을 보내주기도 한다.
10년 이상 살았지만 옆집과 왕래 한 번 없는 아파트보다 이곳의 사람 냄새나는 장터가 나는 참으로 좋다. 시골 장터의 진짜 새해는 음력설까지 기다려야 할 테지만, 만두집 남매, 묵밥 아주머니, 호떡집 내외분, 죽집 여사장님, 야채 트럭 총각, 떡집 모자(母子) 모두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란 인사를 전하련다. 새해에도 무탈하게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