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용어 중에는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라는 말이 있다.
생산 규모가 커질수록 생산비 절약이나 수익성 향상에도 이익이 된다는 말인데, 이 용어를 이제 펀드에 적용해도 될 듯싶다.
보통 규모가 큰 펀드는 운용의 유연성이 떨어져 시장 대비 초과수익을 올리기 힘들다는 것이 시장의 통설이 아니었던가.
18일 자산운용협회 자료에 따르면 6월 5일 기준 국내펀드의 개수가 마침내 1만개를 돌파했다고 한다.
2004년 증권투자신탁업법과 증권투자회사법이 폐지되고 두 법령을 통합해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간투법)이 새로 시행되면서 잠시 1만개를 상회하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운용 중인 펀드의 개수가 1만개를 돌파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재미있는 점은 펀드의 개수 추이와 설정액 추이가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100억원 미만의 펀드는 5989개로 전체 펀드 1만37개 중 59.7%를 차지하는 반면, 설정액에서는 총 35조8000억원 중에서 100억원 미만 펀드의 비중은 4.7%(1조7000억원)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즉, 전체 펀드 중 60% 가까이 차지하는 100억원 미만의 펀드의 설정액을 모두 합해도 1조7000억원 밖에 안 된다는 거다.
이와 같은 현상을 500억원 이상 펀드에 적용해 보면 결과는 정반대가 된다.
같은 기간 500억원 이상의 펀드 개수는 1068개로 전체 펀드 중에서 10.6%에 불과하지만, 설정액은 28조1000억원으로 전체 설정액의 78.5%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주로 사모펀드의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대부분의 사모펀드들이 100억원 미만의 소형펀드로 설정되면서 개수는 많은 반면, 시장에서 차지하는 설정액 비중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수익률 측면에서도 대형펀드들의 수익률이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년 수익률을 보면 500억원 이상의 펀드가 평균 5.4%의 수익률을 올렸지만, 100억원 미만의 펀드들은 4.1%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3년 수익률을 봐도 500억원 이상 펀드는 95.6%의 수익률을 기록한 반면, 100억원 미만의 펀드들은 85.8%의 수익률을 기록해 역시 규모가 큰 펀드가 대체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
이에 대해 우리투자증권 서동필 펀드애널리스트는 "이와 같은 현상은 펀드 규모가 클수록 펀드의 운용전략을 수립하는데 제약이 적고, 시장이 조정을 받더라도 꾸준하게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뒷받침되는 등 시장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설정 기간이 오래된 펀드라고 해서 무조건 수익률이 좋은 것은 아니다.
2001년 설정된 펀드의 3개월 수익률은 7.23%, 2007년 설정된 펀드 역시 평균 7.35%로 큰 차이가 없었다. 6개월 수익률도 각각 -6.11%와 -6.16%로 비슷했다.
서 펀드애널리스트는 "비록 설정 기간이 오래된 펀드들의 수익률이 눈에 띄게 높게 나오는 건 아니지만, 하루 사이에도 수많은 펀드들이 설정되고 청산되는 현실을 비춰보면 설정기간이 짧은 펀드들에 비해서는 보다 신뢰성 높은 운용성과를 기록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설정규모가 큰 펀드일수록 보다 양호한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수익률 측면에서 펀드를 선택한다면 보다 큰 규모의 펀드를 선택하는 것이 보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한 서 펀드애널리스트는 "운용기간을 기준으로 펀드를 선택할 때는 수익률의 차이가 크지 않다면 운용기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보다 유용하다"며 "수익률 차이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장기간 운용돼 온 펀드들이 나름대로 시장의 평가를 거쳤다는 점에서 아직 검증이 안 된 짧은 펀드에 비해 보다 매력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