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4일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과의 두 번째 전화통화에서 그가 한 말이다. 세수 증가에 기재부의 한국은행 일시차입금이 당시까지 제로(0)인 상황을 취재하면서 그와 나눴던 대화 중 일부다.
기자는 신 전 사무관이 퇴직하기 전인 지난해 중순 무렵 취재 건으로 두 번 직접 통화한 기억을 갖고 있다. 아니 생생하다고 할까? 그 이유는 전화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적극성과 발랄함이 꽤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경험은 그가 여느 공무원과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각인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기억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 기자로서도 이번 사태는 충격이었다. 요즘 쓰는 말로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다)’라고나 할까. 소위 잘나가는 자리에 있던 전도유망한 사무관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사실부터가 그랬다.
세간에서 평가하는 악의적이거나 허무맹랑한 폭로일지도 혹은 공익제보일지도 모를 유튜브 방송부터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던 최근 사태 전개까지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또 그때그때 상황 속에서 벌어진 각종 소문(루머)과 정치 공세들은 더더욱 당혹케 했다.
채권시장을 10년 넘게 취재해 온 관계로 이번 이슈 중 하나인 바이백(국고채 매입)의 한 당사자인 채권시장 참여자들에게서도 신 전 사무관이 어떤 사람이냐, 세간에 떠도는 소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꽤 많이 받았다.
그럴 때마다 답은 우선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고,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본다”였다. 그리고 “젊고 순수한 영혼이 조그마한 일에 상처를 받은 것은 아닐까”라는 나름의 평가를 내놨다.
물론 그를 직접 만난 적은 없다. 때문에 개인적인 대화를 나눈 경험은 더더욱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기억과 이번 사태를 겹쳐 보면서 느낀 심정은 그가 여리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 경험을 일반화한 오류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부족한 의사소통(커뮤니케이션)’이라고 본다. 신 전 사무관은 아직 30대 초반의 청년이다. 반면 언급된 당시 박성동 국고국장이나 차영환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 등은 50대 중후반 인물들이다. 언론사 주변이나 기자의 주 출입처인 한국은행에서도 요즘은 30대 후반만 돼도 새로 입사한 30대 초반과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호소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국고채는 한 해 100조 원 정도가 발행되고 있다. 이 중 문제가 된 바이백 1조 원과 적자국채 4조 원은 합해 봐야 5조 원 규모다. 상당한 액수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연간 100조 원 규모와 비교했을 때 불과 5% 수준이다. 또 바이백이 취소된 직전 달에는 되레 발행계획 발표 후 중간에 바이백이 6000억 원 증액되기도 했었다.
이미 국회로부터 쓸 수 있도록 한도를 승인받은 만큼 그 범위 내에서 적자국채를 더 발행할지는 충분히 정부의 재량 영역이다. 또 그 판단은 여러 사안을 고려해 정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반면 실무자인 신 전 사무관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의 주장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세수가 더 걷히는 상황에서 굳이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아도 되고, 바이백을 통해 빚을 갚아 나가는 게 우선일 게다. 아울러 몇 가지 언급들을 충분히 부당한 압력으로 인식할 수도 있겠다.
세상은 바뀌고 있다. 젊은 실무자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노력이 있었어야 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기재부의 검찰 고발은 아쉽다. 여당인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막말도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다. 신 전 사무관이 유서에서 썼던 “제가 부족하고 틀렸다고 해요. 만약 그래도 이번 정부라면 최소한 내부고발로 제 목소리를 들어주시려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는 호소를 곱씹어볼 때다.
정쟁거리로 키우고 있는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은 말해서 뭐하겠나 싶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연간 50조 원 안팎 규모였던 국고채 발행 규모를 박근혜 정부가 끝날 무렵 100조 원 규모로 키웠던 게 지금의 보수 야당 아닌가? 신 전 사무관도 유튜브에서 “촛불 시위도 나갔다”는 말로 그가 한국당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가늠하고자 한다.
또 한 가지 간과하는 문제 중 짚고 넘어갈 것은 시장과의 소통이다. 국고채 발행은 채권시장이라는 상대방이 있다. 바이백을 하루 앞두고 갑작스레 취소한 점은 그 당시에도 이래저래 뒷맛을 남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