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웃음 바이러스

입력 2019-01-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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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교열팀장

새해 첫날 새 달력을 책상 위에 놓으며 마음이 설렜다. 지난해의 시간을 비우고 새로운 날들을 채우려니 잔잔한 떨림도 느껴졌다. 부디 올해는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길. “새해가 밝았구나! 교양 있는 선비는 새해를 맞으면서 반드시 그 마음가짐이나 행동을 새롭게 해야 한다.” 다산 정약용이 귀양살이 중에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며 각오를 다져본다.

새해를 맞아 계획들을 세웠을 게다. 집 없는 사람은 내 집 마련을, 청년들은 취업을, 주부들은 가족의 건강을…. 소중한 꿈들이 다 이뤄졌으면 좋겠다. 금연, 외국어 공부, 해외여행, 다이어트 등 일상의 크고 작은 결심들도 했을 터.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된다 해도 실망할 일은 아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도전하면 되니까.

나는 새해가 되면 수첩에 늘 똑같은 결심을 옮겨 적는다. 험담하지 않기, 음식 남기지 않기, 다른 사람을 위하여 시간 내기, 검소하게 살기,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기, 기쁘게 살기. ‘어디선가 봤는데’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많으리라. 몇 년 전 화제를 모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해 결심’이다. 신앙심은 물론 이웃 사랑, 타인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교황의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난 ‘참’ 좋은 내용이라 수년째 따라 하고 있다.

물론 평범한 사람으로선 실천하기 어려운 ‘주님을 자주 만나 대화하기’, ‘가난한 이들 찾아가기’,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친구 되기’ 등은 처음부터 뺐다. 대신 ‘많이 웃기’를 적는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웃는 집에는 온갖 복이 다 들어온다고 했다. 웃으면 건강해진다는 말도 이젠 상식이다. 일소일소(一笑一少)라 하지 않는가.

웃음소리는 나라마다 다르다. 중국은 ‘하하(哈哈), 허허(呵呵)’, 영국은 ‘하하(haha), 호호(hawhaw)’ 웃는다. 일본은 높은 소리로 쾌활하게 웃는 모양을 ‘가라카라(からから)’, ‘게라게라(げらげら)’로 표현한다. 태국은 숫자 ‘55555’로 웃음을 나타낸다. 숫자 5를 뜻하는 태국어의 발음이 ‘하(haa)’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굴 표정, 소리 등에 따라 웃음을 표현하는 말이 무궁무진하다. 눈웃음, 입웃음, 코웃음, 목웃음, 얼굴웃음, 입술웃음은 기본이다. 시원치 않게 웃는 데설웃음, 키득거리며 웃는 까투리웃음, 마음에도 없이 겉으로만 웃는 겉웃음, 여러 사람이 함께 웃는 뭇웃음, 크게 소리를 내어 시원하고 당당하게 웃는 너털웃음 등은 듣기에도 재미 있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웃음을 좀 더 상세하게 표현하면 우리말이 얼마나 발달된 언어이며 값진 문화유산인지 알 수 있다. 상그레·성그레·생그레·싱그레·쌩그레·씽그레 등은 눈웃음 시늉말이다. 방그레·방시레·방글·방글방글·방실방실·상긋방긋 등은 입웃음을, 해죽·해죽해죽·쨍긋·쨍긋쨍긋 등은 얼굴웃음을 그렸다. 웃음 표현만 꼽아도 족히 100개는 넘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예쁜 웃음은 어린아이가 탐스럽고 귀엽게 웃는 모양인 앙글방글과 앙글앙글이다. 입을 작게 벌리고 소리 없이 예쁘장하게 가볍게 자꾸 웃는 모양인 봉싯봉싯도 그 표정이 떠올라 절로 미소 짓게 된다.

누군가 웃음을 “부작용이 전혀 없는 천연의 명약(名藥)”이라고 표현했다. 엔도르핀을 분비해 우리 몸의 면역 체계를 강화하기 때문이란다. 웃음은 또 바이러스처럼 빠르고 강하게 퍼져 다른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행복하게 만든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새해 늘 웃으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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