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르노의 티에리 볼로레 최고경영자(CEO) 권한대행은 지난 14일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사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곤 전 회장에 대한 일본 검찰의 기소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며 임시 주총 소집을 요청했다.
볼로레 권한대행은 “이번 기소로 르노는 물론 르노와 닛산의 관계(르노-닛산-미쓰비시 3사 연합)에도 중대한 위기가 발생했다”며 “17일 열리는 닛산 이사회에서 르노는 최대주주 자격으로 가능한 한 빨리 임시 주총 소집을 정중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임시주총 요구는 닛산이 회장선출 등에서 독주하는 것을 막기 위한 긴급 처방으로 풀이된다. 곤 전 회장이 해임되면서 닛산 이사회의 르노 측 인사는 기존 3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 이마저도 르노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만한 고위직은 없다. 르노와 닛산이 체결한 ‘개정 연합 기본합의서’(RAMA) 상에서는 양사가 이사회나 고위 임원을 변경하는 데 제한을 두고 있다. 임시 주총을 통하지 않으면 닛산의 정기 주주총회인 내년 6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당초 닛산은 이날 이사회에서 후임 회장을 선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르노 측 2명 등 사외이사들이 이견을 보이고 르노가 임시 주총도 요구하며 저지하고 나선 셈이다. 닛산은 그간 사이카와 현 사장이 잠정적으로 회장직을 겸하는 방안 등을 제시해왔다.
곤 회장 체포 직후 그의 해임을 결정한 닛산, 미쓰비시 이사회와 달리 르노는 아직 곤 전 회장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르노 지분 15%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프랑스 정부가 미쉐린의 세나르 CEO를 르노자동차의 대표로 추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곤 회장에 대한 일본 검찰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면서 그를 대신할 인물을 빠르게 찾은 것으로 풀이된다.
양사의 누적된 긴장감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르노가 1999년 위기에 처한 닛산 지분을 대규모 인수하면서 곤이 닛산에 최고운영책임자(COO)로 파견됐다. 그는 당시 고용인력의 14%에 해당하는 2만1000명을 구조조정 하는 등 파격 행보를 보이며 1년 만에 회사 재정을 안정시켰다. 일본 기업 특유의 문화인 연공서열 제도 대신 성과제를 도입해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켰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후한 보상을 준 것으로 드러나 배신감을 샀다.
특히 르노의 닛산 지분율은 43%로 최대주주이고 닛산도 르노 지분 15%를 갖고 있지만 의결권이 없다. 닛산은 이번 기회를 통해 르노보다 훨씬 매출이 많은 자사가 르노에 종속되는 상황을 반전시키려 하고 있다. 사이카와 CEO는 지난달 곤 전 회장 해임 관련 사내 설명회에서 “르노와의 제휴 관계는 대등하지 않다”며 “그간 르노와의 협상을 곤 전 회장이 도맡았지만 앞으로는 내가 직접 이야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