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SNS에서 읽은 “어떤 빗방울도 자신이 홍수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경구가 머리를 친다. 지금 우리 처지를 이렇게 콕콕 찌르듯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말은 없지 싶다. 삽시간의 물난리에 모든 걸 잃은 후에도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거나, 세상 잘못된 것은 자기만 빼고 나머지 모든 이들의 책임이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졌다.
이 경구는 영국의 작가인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Adams, 1952~2001)가 처음 만들어 썼다. 영어로는 “The single raindrop never feels responsible for the flood”다. 그의 대표작은 1978년에 전파를 탄 라디오 드라마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다. ‘은하계 초공간 개발위원회’가 은하 간 우회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지구를 파괴하기 직전 탈출에 성공한 주인공이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우주를 떠도는 처지가 된다는 내용이다.
영국과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자 소설로 개작됐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애덤스가 이 작품으로 독자에게 주고자 한 메시지는 ‘지구가 멸망한다면 당신에게도 책임이 있다’이다. ‘어떤 빗방울도 홍수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는 경구는 이 메시지를 뒤집어 놓은 것이리라.
애덤스의 경구가 엉망이 되어가는 나라꼴을 표현한다면 “지푸라기 한 올이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다”라는 영국 문호 찰스 디킨스(1812~1870)의 속담은 하루하루 짓눌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라비아 상인들은 낙타에 짐을 싣고 사막을 건넌다. 먼 길이니 많이 실을수록 좋다. 상인들은 낙타 등에 짐을 쌓고 쌓는다. ‘이거 하나쯤 더 올려도 되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마지막으로 지푸라기 한 올을 올린다. 바로 그 순간 낙타는 무릎이 꺾어진다. 등이 부러진다.
아라비아에서 흘러 들어온 이 이야기는 ‘It is the last straw that breaks the camel’s back’이라는 속담이 돼 디킨스가 1850년부터 발간한 ‘속담집(Household words)’에 실렸다. 이 속담으로 인해 ‘Last Straw’는 사전에서 ‘마지막 지푸라기’가 아니라 ‘최후의 일격’으로 풀이된다. 최후의 일격은 흔히 생각하듯 큰 것 한 방이 아니라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 비롯된다는 통찰이다.
지푸라기 때문에 허리가 부러지건, 빗방울 때문에 둑이 무너지건 매일 매일이 정말 걱정스럽다. 순간순간 새로운 짐이 내 등짝에 쌓이고 여기저기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느낌이다. 뒤엉킨 경제, 파업, 시위, 서로서로 목청껏 퍼붓는 욕설, 오만가지 내로남불…. 거기다 ‘김정은 환영위원회’, ‘위인맞이환영단’까지 설치고 있으니!
내 견딜 만큼만 실으면 참으련만 돌아가는 꼴이 그게 아니다. 짐을 싣는 게 아니라 일부러 허리를 부러뜨리려고 작정하고 나선 것 같다. 아니겠지. 설마 저들 머리에 ‘죽어라 죽어! 네까짓 낙타는 필요 없다’ 이런 생각이 들어 있는 건 아니겠지. ‘썩은 물 가득한 이 저수지, 물갈이를 하려면 댐을 허무는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낙타 허리 부러지면 당신도 죽어. 저수지 둑 터지면 당신도 휩쓸려 사라져. 이런 말을 해준들 귀를 막고 있으니 이를 어쩌나!!
(애덤스의 소설은 ‘죽기 전에 읽어야 할 1001권의 소설’에 포함됐다. 디킨스와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 이 소설로 만든 영화는 2005년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됐다. 관객은 겨우 2만 명! 애덤스의 메시지는 오래전에 우리나라에서 철저히 묵살당했다고 말해도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