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은 1995년 미생물은행을 설립해 세균과 버섯, 효모, 사상균(실처럼 생긴 미생물), 종자, 바이러스 등 미생물 8100종 2만3000점을 보관·연구하고 있다. 미생물이 필요한 기업이나 연구기관에 균주를 제공한다. 지금까지 미생물 3만7000여 점을 민간에 분양했다. 특히 미생물은행은 국내외에서 특허 출원을 받은 미생물 자원을 보호하고 활용 방안을 다양화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미생물은행에 기탁된 특허 미생물은 대부분 안전한 보관을 위해 영하 196℃ 액체 질소 안에서 30년 동안 장기 보존된다. 종 특성에 따라 분말 형태로 동결 건조하거나 주기적으로 배지(미생물을 배양하는 액체나 고체)를 옮겨가며 보존하는 경우도 있다.
농진청이 이처럼 미생물 보존·연구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이를 통해 학술적 가치를 넘어 경제적 가치까지 창출할 수 있어서다. 최근 바이오 소재가 주목받으면서 미생물은 식품과 생활용품, 의약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계면활성제 등 소재는 미생물의 활용 가능성이 큰 대표적인 분야다. 미생물을 이용해 만든 소재는 화학적 방법으로 만든 제품에 비해 친환경적이고 사용이 쉬운 장점이 있다. 미생물의 종 다양성을 이용하면 화학 합성이 어려운 물질을 만들 수도 있다.외국에서는 일찌감치 상업화에 성공, 세제나 화장품 등에 활용하고 있다. 일본 화장품 회사 SK-2는 효모 발효대사물인 ‘피테라’를 활용한 제품을 내놨다. 농진청은 내후년부터 젖산균과 효모 등을 활용해 보습물질과 항균물질 등을 개발할 계획이다. 다만 미생물 소재가 아직 단가가 비싸고 생산이 불안정하다는 점은 풀어야 할 과제다.
미생물은 농업 분야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생물 주변에 서식하는 다양한 미생물)이 대표적이다. 유용한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하면 작물의 생육을 촉진하고 병충해나 저·고온에 대한 내성도 높일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작물 마이크로바이오옴 시장은 18억 달러 규모로 매년 5%씩 성장하고 있다. 농진청 역시 2015년 ‘우장춘 프로젝트’로 마이크로바이오옴 연구에 뛰어들었다. 마이크로바이오옴을 활용해 친환경 농약과 비료 등을 내놓는다는 게 농진청의 구상이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생물을 발굴해 산업화하는 것도 농진청과 미생물은행의 중요한 역할이다. 농진청은 2009년부터 전국의 메주에서 곰팡이를 수집하는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101종 1479점을 수집하고, 이 가운데 기능이 뛰어난 10종은 특허까지 출원했다.
특히 경기도 한 농가에서 수집한 황국균은 아직 다른 나라에서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토종 품종이다. 기존 균보다 맛 성분이 높고 독소도 나오지 않아 식품 산업에서 활용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가능성을 본 농진청은 미생물 전문기업과 손잡고 황국균을 활용한 시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미생물의 경제적 가치는 더 높아질 전망이다. 8월 국내에도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됐기 때문이다. 나고야의정서는 다른 나라의 생물 자원을 활용하려면 사전 승인을 받고 이익도 공유하도록 하고 있다. 미생물 발굴로 생물 자원 주권을 인정받으면 업계의 부담은 줄어드는 반면 외국에 로열티를 요구할 수도 있다. 미생물 등 생물 자원 확보가 중요해진 이유다.
김남정 농진청 농업미생물과장은 “국내 토착 미생물의 지속적인 확보와 활용으로 농업적 활용도를 높임으로써 국외 자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