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초호황을 누려온 국내 반도체 산업이 내년부터 침체국면에 진입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 하반기부터 이른바 ‘슈퍼사이클’이 꺾였다는 신호가 여러 경제지표로 나타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반도체는 한국 전체 수출 중 20%대를 차지하는 핵심산업이다. 그러나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10월 69.6%로 정점을 찍은 후 올해 상반기까지 50% 내외를 유지하다가 9월부터는 아예 20%대로 내려 앉았다.
특히 올해 초부터 글로벌 투자은행 중심으로 ‘반도체 고점론’이 제기되면서 비관적 전망에 불이 붙었다. 낸드 플래시, DRAM 등 공급 과잉으로 메모리 가격이 하락해 반도체 사업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이유에서다. 하락 사이클이 시작될 것이란 우려에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주가도 재평가받고 있다. 3분기에 이어 4분기도 사상 최대 규모의 실적을 발표했지만, 주가는 내년 업황 악화에 대한 우려를 더 크게 반영했다.
◇반도체 고점일까…일시적 조정 후 호황 온다 = 낙관적 시각도 존재한다. 내년 상반기부터 신기술 도입으로 새로운 수요가 발생해 양호한 수급현황을 보일 것이란 주장이다. 이어 반도체 업체들이 공급조절을 통해 하락 사이클을 조정하고 있어 DRAM 가격 급락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공급과잉에 대비해 분기별로 설비투자를 대폭 축소하거나 늦추는 등 탄력적으로 투자계획을 조정하고 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CPU 공급 부족, 데이터센터 투자 둔화, DRAM 공급 증가, 중국 메모리 산업 진입 등 우려에도 내년 상반기부터 새로운 수요가 발생해 양호한 수급 현황을 예상한다”며 “특히 5G 가시화, 폴더블 스마트폰 등장, 데이터센터 수요 성장세, PC수요 개선 등이 반도체 산업의 호재 요인으로 꼽힌다”고 진단했다.
우선 PC부문에서 DRAM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 도 연구원은 “PC 출하량이 올해 2분기부터 증가했는데 이는 6년 만에 확인된 수치”라며 “암호화폐 채굴 전용 기계 등장으로 GPU 가격이 하락해 게이밍 PC 수요도 자극하고 있으며, 6년 전 인텔이 출시한 샌디브릿지 CPU를 탑재한 PC 교체주기가 도래해 내년부터 PC부문에서 수요 증가가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인텔의 CPU 공급 부족이 PC수요 증가의 발목을 잡았지만, 인텔이 추가 장비 투자를 결정하면서 내년 2분기부터 공급 부족도 해결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공급 부족이 발생할 정도로 PC와 서버 수요가 양호한 수준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IT기업들의 클라우드 투자가 대폭 늘어나면서 데이터센터 성장으로 올해 서버 DRAM 수요가 전년 대비 49% 증가, 내년에는 28%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4차 산업혁명 영향으로 파운드리 관련 수요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반도체 설계 기술을 보유한 팹리스(fabless) 스타트업 등이 생겨나면서 IoT(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스마트팩토리 등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칩 설계 아이디어,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배경에서다.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서는 파운드리 산업에 기대감을 드러내며 “최초 EUV공정 양산 적용이 시작돼 EUV기술로 인한 반도체 산업 변화가 시작되는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메모리 반도체 호황 이후를 대비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시 한 번 삼성전자·SK하이닉스 = 투자 유망종목으로 단연 삼성전자가 최우선적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내년 말부터 EUV를 적용한 7나노 로직(Logic)공정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EUV기술 양산 적용이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전 세계 반도체 업체 중 유일하게 7㎜ 공정을 적용 중인 대만의 TSMC와 공정기술 격차를 줄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DRAM가격 하락으로 내년 1분기까지 감익 추세가 이어지겠지만, 최근 주가 낙폭이 감익 전망을 충분히 반영했다는 게 업계의 공통 의견이다.
유진투자증권은 삼성전자에 이어 SK하이닉스도 탑픽스로 제시했다. 불확실성에 따른 공포감이 커지면서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밸류에이션과 주가가 과도한 수준으로 하락했다는 설명이다. 불확실성이 하나씩 제거되면 주가가 저점 수준에서 점진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탑픽스 이외 관련 장비업체 중에서는 안정적 이익 성장이 기대되는 SK머티리얼즈, 원익머트리얼즈를 추천했다.
한솔케미칼도 유망주로 꼽힌다. 내년 과산화수소 증설에 따른 매출액, 이익증가가 예상되고 삼성디스플레이의 QD-OLED 설비투자로 퀀텀닷 소재사업의 성장성이 부각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퀀텀닷 소재사업의 성장성은 2020년 이후 더 높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은 한솔케미칼에 대해 “업황 둔화에 대한 우려로 밸류에이션이 충분히 낮아져 주가의 하락 위험은 크지 않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결국 반도체 업황은 1년 주기인 ‘상고하저’에 이어 장기적 관점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으로 모아진다. 신한금융투자는 내년 하반기에 DRAM 가격 반등을 예상하며, 1분기부터 DRAM 업체들에 대한 분할 매수 전략이 유효하다고 분석했다. 추천 유망주로는 SK하이닉스, 한미반도체 등을 꼽았다.
김양재 KTB증투자증권 연구원은 “수급 고려 시 내년 1분기까지 가격 낙폭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업계 공급 조절과 성수기 효과로 2분기부터 낙폭 축소가 예상된다”며 “전방 투자 재개 시 실적 회복 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의견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