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백호 선생이 통탄한 대로 우리나라만 한 번도 스스로 황제를 칭하지 못하고 중국을 주인으로 섬겼는데 이러한 답답한 사대주의는 우리의 근현대사에서도 지속된다. 청일전쟁 승리의 전리품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청나라의 모든 간섭을 차단한 일본은 우리에게 청나라와 동등한 지위를 가지라며 ‘대한제국’을 선포할 것을 종용했다.
이렇게 탄생한 대한제국은 일본의 꼭두각시로 겨우 연명하다가 결국 1910년에 일본에 나라를 내주고 말았다. 일본에 나라를 내주는 데에 앞장선 친일파들은 일본에 대해 개처럼 철저히 사대했다.
1945년, 광복된 이 땅에 미군이 들어오자 이번엔 미국에서 공부한 일부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미국에 대해 철저히 사대함으로써 남한만의 정부수립 주역으로 성장하였다. 조국의 분단으로 인해 생겨난 반공이라는 새로운 이념 아래 6·25전쟁을 치르면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극대화되었으며, 한 번 극대화된 미국의 영향력은 지금도 남북한 모두에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자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또한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다. 중국의 입맛에 맞는 논문을 쓰며 중국보다 더 앞장서서 한국 문화를 중국 문화의 아류로 취급하려 드는 연구 아닌 연구를 하는 사람도 눈에 띄고, 동북공정이라는 중국의 공개된 음모 앞에서 한마디 말도 못하고 오히려 중국의 비위를 건드릴까 봐 우려하는 정부의 자세도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중국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를 중국 정부는 중국 영내의 소수민족으로 여겨 조선족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조선족이면 같은 조선족 혈통인 남북한 모두 다 중국의 소수민족 국가가 되어 버릴 수 있는데도 아무 생각 없이 우리도 덩달아 조선족이라고 부른 결과, ‘조선족’이 아니라 ‘재중동포’인 그들을 이제는 ‘재중동포’라고 부를 수도 없게 되었다. 한심한 일이다. 임백호 선생 물곡비의 의미를 심각하게 다시 새겨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