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요 정보·기술(IT) 업체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세제 개혁 덕을 톡톡히 보고도 자기들 배만 불려 눈총을 받고 있다.
애플 알파벳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MS) 오라클 등 5개 기업이 작년 말 경 시행된 미국 세제 개혁 이후 최근까지 자사주를 매입했는데, 그 규모가 지난해 전체 자사주 매입 규모의 2배에 이른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또 IT 기업들은 세제 혜택으로 인한 여윳돈을 부채 상환으로도 돌렸다. 다시 말하면, 세제 개혁이 미국 근로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거나 설비투자를 자극하기보다는 투자자들 배를 불리는 쪽으로 흘렀다는 것이다. 전미실물경제협회(NABE)는 지난달 “세제 혜택이 고용과 투자로 폭넓게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알리안츠의 월터 프라이스 IT 투자 책임자는 “대부분의 기업은 현금을 새로운 설비투자보다는 자사주 매입이나 기업 인수·합병(M&A)에 쓰고 있다”며 “이것은 주주나 경영에 유익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IT 기업들이 전년에 자사주를 매입하느라 진 빚을 갚느라 현금을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부터 법인세 최고 세율을 35%에서 21%로 낮추고, 기업들이 해외에 보유하던 현금을 본국으로 송환하면 1회에 한해 15.5%의 낮은 세율을 적용해주기로 했다. 이에 애플은 올초에 “해외 현금을 본국으로 송환하겠다”며 향후 5년간 미국 경제에 3500억 달러를 투입해 2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기여하겠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이후 애플의 자본지출은 145억 달러로 전년보다 14%나 늘었다. 하지만 올 들어 9월까지 자사주 매입액은 626억 달러에 이른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 시점의 3배에 가까운 규모다.
일부 전문가들은 송환된 현금이 신규 투자에 기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단지, 신규 설비투자 같은 경우는 자사주 매입보다 자본지출 수치에 반영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리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선트러스트 로빈슨 험프리의 유세프 스퀄리 IT 애널리스트는 “세제 개혁과 자본지출 간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며 “구글과 페이스북은 올해 설비투자에 총 370억 달러를 쓰기로 했는데, 이는 작년의 210억 달러에서 크게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는 기업들의 투자에 대해 회의적이다. 도이체방크의 브렛 라이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4분기 설비투자가 회복된 후 내년에는 다시 둔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골드만삭스는 올 들어 지금까지 자사주 매입이 1년 전보다 44% 증가했다며 내년에는 22%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자사주 매입 증가율의 99%는 25개 기업이 차지했다고 한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현금 뭉치를 갖고 있는 100개 비금융 회사를 분석한 결과, 작년 12월 세제 개혁이 시행된 후 갚은 부채액수가 720억 달러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이들 기업은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는 810억 달러를,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에는 거의 절반인 470억 달러 가량을 썼다. 무디스의 데이비드 곤잘레스 수석 회계분석가는 “세제 개혁 이후 기업들이 부채를 청산하면서 행동이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기업들의 부채는 금융위기 직전 수준인 9조4000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46%에 이르는 규모로 재닛 옐런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경고를 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