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기자가 해봤다] 15년 무사고 기자, VR로 음주운전 체험해보니

입력 2018-11-0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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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대한민국 공익광고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재회' 편. 음주운전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출처=코바코 영상 캡처)
▲2018 대한민국 공익광고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재회' 편. 음주운전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출처=코바코 영상 캡처)

나는 15년 차 무사고 운전 베테랑이다. 넉살 좋은 후배 몇 명을 모아 오늘 '번개'를 하려는 참이다. 못된 부장에게 낮에 한소리 들었던 게 이유다. 누군가에게 하소연이라도 해야 밤에 잠이 올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하게 차를 가지고 왔지만 그게 무슨 대수냐.

500cc 한 잔, 두 잔을 비워갈 때마다 스크래치 난 자존심도 살아나는 느낌이다.

"선배 차 가지고 왔잖아요. 대리 불러요."

핸드폰을 열어 문자 내역을 쭉 훑었다. "고객님 6000원 적립 중. 00대리운전. 24시간 대기"

잠시 갈등이 됐다.

"괜찮아. 15년 무사고인데. 단속에만 안 걸리면 그만이지. 그냥 슬슬 가면 돼."

호기롭게 운전대를 잡았다. 몽롱한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악셀 위에 발을 올렸다. "역시!"

신나는 음악을 틀었다. "곤드레 ~만드레~ 난 취해버렸어". 창문을 열고 야경을 만끽하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 순간 나는 아슬아슬하게 차선을 넘고 있었다. 뒤 차는 클랙슨과 전조등을 연신 깜박였다. 내가 밟고 있는 것이 흰 선인지 노란 선인지 알게 뭐야. 그냥 앞으로 똑바로 가면 되고 집에만 도착하면 그만이지.

아뿔싸. 갑자기 나타난 트럭에 놀란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 지난 2일 한 공익광고제의 음주운전 VR 체험 내용을 바탕으로, 살을 붙인 가상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오늘도 취해 운전대를 잡는다.

▲한 시민이 VR를 통해 음주운전 간접 체험을 하고 있다. (유정선 기자 dwt84@)
▲한 시민이 VR를 통해 음주운전 간접 체험을 하고 있다. (유정선 기자 dwt84@)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음주운전 사고는 1만9517건. 부상자는 3만3364명, 사망자는 439명에 이른다.

지난 5월 30일에는 만취 운전자 때문에 두 가정이 박살 난 사건이 발생했다. 만취한 상태로 고속도로에서 역주행하던 운전자가 택시를 들이받는 바람에 30대 가장인 승객이 숨졌고, 택시기사는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추석 명절에는 부산 해운대에서 음주 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카투사에서 복무 중이던 윤창호 씨가 치여 아직까지 사경을 헤매고 있다.

2018년 공익광고제 공모전에서 음주운전 사망 사고 UCC인 '재회' 편으로 대상을 받은 서진형 씨는 동생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음주로 운전대를 잡았다가 함께 사망한 형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는 음주운전이란 소재를 가지고 UCC를 만들게 된 이유에 대해 "요즘 늘어나고 있는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면서 "한 사람의 삶을 무참히 깨트리는 음주운전에 대해 우리나라는 처벌 수위가 미비한 게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이슈가 된 유명인이나 공인들의 음주운전 행태에 대해 "모범이 보여야 할 공인이 사회적으로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다"라며 "웃기는 상황"이라고 일갈했다.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은 강화되고 있지만 재범률 또한 높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음주운전 재범률은 45%에 이르고 3회 이상인 경우는 20%에 달했다. 음주운전 재범률이 높고 재위반 기간이 짧은 건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음주운전으로 징역형을 받은 사람은 집행유예를 포함하더라도 전체의 7%에 불과하다.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되면 최대 3년의 징역을 받을 수 있지만 대부분 벌금형에 그쳤다.

음주운전은 한 사람의 단순한 실수라고 치부하는 사회적 인식도 한몫을 한다. 더욱이 음주운전 단속에 걸렸다고 하면 "재수가 없었네"라는 말이 돌아오는 게 현실 아닌가.

▲음주운전 VR 체험장.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반영하듯, 한산하기만 하다. (유정선 기자 dwt84@)
▲음주운전 VR 체험장.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반영하듯, 한산하기만 하다. (유정선 기자 dwt84@)

음주운전 VR 체험에 나선 한 시민은 "일부러 관심이 있어 체험하러 온 것은 아니다. 길을 가다 호기심으로 왔다"면서 "실제로 해보니 끔찍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구나. 느끼는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VR 체험장에서 말을 건넨 진행 요원은 "많은 분들이 음주운전 VR 체험이 생소하신 것 같다. 오시는 분이 많지 않다"라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음주운전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으로 사회적 피해 역시 적지 않다.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은 잠재적인 살인자나 마찬가지로, 나뿐만 아니라 아무런 죄 없는 사람이나 또는 그 가정까지 파탄으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숨지게 하면 살인죄처럼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윤창호법'은 지난달 여야의원 104명이 동참해 발의된 바 있다. 윤창호법이 하루빨리 통과돼 아무런 죄 없이 음주운전으로 피해를 입는 '제2의 윤창호'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본 기자는 무사고 15년 베테랑 운전사다. 그러나 안이한 생각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유정선 기자 dwt84@)
▲본 기자는 무사고 15년 베테랑 운전사다. 그러나 안이한 생각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유정선 기자 dwt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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